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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에 고결한 헌사를 담아 다음 세대에 전해주겠다”
2021년 07월 04일 (일) 12:56:06 차성경 기자 biblecar@newsmaker.or.kr

인물화는 회화 장르 중에서도 어려운 장르다. 그 대상이 가진 내적, 외적 감성을 작품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실적으로 그 인물을 표현한다고 해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서양 회화의 역사는 인물화와 함께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인물화 그림들은 특정의 누구보다는 당대의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거나 사회변화에 대한 참여의 현장이었다. 신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의 변화를 꾀한 모나리자나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사회상을 담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더 위로 올라가면 세잔이나 고갱의 인물 역시 시대적 사회상을 담아내고 있다.

▲ 오동희 화백

역사의 아이콘을 화폭에 담아내는 초상화의 대가
“긴 세월 수많은 얼굴을 그려왔다. 그림은 내게 즐거움이고 보람이다. 때로는 고통일 수 있지만 그 또한 내가 선택한 삶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초상화는 미술 컬렉터들의 선호 장르가 아니다. 때문에 1980년대 이후 사회격변기를 겪으면서 민중미술계열에서는 다양한 인물화가 그려졌지만 그림을 구매하는 이들의 외면으로 사회성이 가미된 초상화는 여전히 국내 미술계에서 뒷전에 머물러 있다. 오동희 화백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오동희 화백은 50여 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화혼을 불태우며 대상의 섬세한 표정을 터치하고 세련되게 성격을 묘사하는 인물화의 본질을 추구해온 국내 최고의 사실주의적 인물화의 대가다. 오 화백의 작품들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예민한 감각들이 인물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인물화의 주된 요소인 신체의 비례, 얼굴 표정, 자세뿐 아니라 대상의 성격과 향기까지 담아내고 있는 그의 작품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터치로 이미지화하여 감상자들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화폭에 깊게 배인 조형의 언어, 수천 번의 터치로 완성되는 오롯한 삶의 초상, 매끈한 표면 대신 셀 수 없는 덧댐이 만들어낸 투박한 질감은 화면 속 대상의 감정과 느낌, 그리고 인생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특히 서양유화의 기법을 따르면서도 서양 왕정초상화 특유의 과장된 위엄 대신 눈썹 결, 손등 힘줄눈가 주름, 혈관흐름까지 세심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양초상의 세필 선묘법(線描法)과 헌정 정신을 잇는 그의 작품은 미학적 아름다움 외에도 당대의 복식과 장신구, 표정과 기품까지 읽을 수 있어 그 가치가 남다르다. 이에 오동희 인물화전을 비롯해 미술과 비평 러시아 초대전, MIFA Art fair, 오도의 초상화 갤러리전, 파리아트 페어전 등 국내외 단체전 50여 회에 참가하며 역량을 발휘해온 오동희 화백은 넬슨 만델라, 마더 테레사, 백범 김구를 비롯한 세계적 위들과 2012년 공식영정을 제공받아 제작한 김수환 추기경의 초상화, 그리고 한서대 총장으로부터 의뢰받은 역대 한국 대통령 초상화, 엘리자베스 여왕, 프란치스코 교황, 법정스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아이콘들을 화폭에 담아왔다. 특히 2014년 MIFA아트페어 당시 오 화백은 ‘조반니 벨리니처럼 유럽 성화의 클래식함까지 잘 표현하는 훌륭한 화가’라고 칭송을 받았으며, 프랑스 파리 까루젤 뒤 루브르 살롱에 입성했을 때에는 “모나리자의 미소나 도송빌 백작부인의 우아함을 매혹적으로 표현하는 위대한 화가가 동양에도 있었다”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세계 갤러리들의 사랑 받는 대한민국의 대표 초상화 작가
어릴 때부터 탁월한 예술적 소질로 두각을 나타냈던 오동희 화백은 데생에 있어서는 거의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원하던 미대 대신 제약회사에 입사해야 했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지 않았던 그는 주말이면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감상하곤 했다. 유독 인물화에 감흥을 얻었다는 오 화백은 한 초상화 작품을 보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확신했다. 오동희 화백은 “그날도 미술관을 다니면서 명화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초상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부터 초상화에 주력한다면 장차 대한민국 초상화의 1인자가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고 부연했다. 그때로부터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그는 정말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초상화 작가가 되었다.

지난 2016에는 국내 최초로 초상화 전문 갤러리인 오동희갤러리도 개관, 종교를 초월한 큰 인물들 및 위인들과 명사들의 초상화를 전시하는 갤러리, 그의 작업실과 후학들을 위한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인물화 대가가 된 지금에도 누드크로키와 골상학, 피부의 결과 근육의 흐름까지 전문서적을 탐독하며 연구하며 홍대 미술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이수할 정도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해온 오동희 화백.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오 화백의 작품이 ‘초상화 분야에 사료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 갤러리들의 사랑을 얻게 된 것이다. 오 화백은 “초상화는 개인영달이나 소장용이기보다는 복제된 역사의 현장, 특정 인물의 기품과 명예를 비추는 거울이다”면서 “예술은 끝이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초상화의 1인자로 역사에 기억되고자 생을 걸고 몰아의 세계에서 전력투구해왔지만 지난 50여 년을 돌아보자니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앞으로도 역사의 아이콘을 캔버스에 담을 때마다 창작자만이 갖출 수 있는 고결한 헌사를 담아 다음 세대에 전해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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