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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두려운 사람들
2009년 01월 02일 (금) 11:26:47 황태희 논설위원 hth@

뜻하지 않게 몰아닥친 경제 위기로 인해 예년보다 부쩍 늘어난 노숙인. 겨울은 이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 극한의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는 계절이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 또는 우리네 친구이기도 했을 노숙인들은 경제 위기에 휘둘려 하나둘 거리로 내몰렸다. 종이박스를 지붕 삼아, 신문지를 이불 삼아 서울역 및 주요 역과 각 지하도 등에 방치돼 있는 노숙인들은 어김없이 찾아온 이번 겨울이 야속하기만 하다. 

   
각종 매체는 겨울만 되면 노숙인들이 객사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전하기 싫어도, 듣고 싶지 않아도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들이 겨울을 넘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탈하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 소원일 만큼 노숙인들은 겨울이란 계절 앞에 목숨의 위협마저 느낀다.

왜 노숙인이 되어야만 했을까?
사실상 제2의 IMF나 다름없는 경기한파가 몰아치면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대량 실직사태를 낳아 갈 곳 잃은 저소득층은 사회 한구석으로 내몰리게 된다. 더구나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사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조정해 이 같은 우려는 더욱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경제위기 때 가장 심각한 고통을 겪는 계층은 경제적 약자인 서민들이다. 이미 산업현장에서는 임금을 제때 지불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아파트 건설현장 근로자나 덤프트럭 운전자 등 하루 벌어 하루 끼니를 잇다시피 하는 일용직 저소득층은 임금을 제때 못 받으면 모든 생활이 마비된다. 최근 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올해 9월까지 집계된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17만여 명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만4000명(25%) 증가한 것이다. 현 상황이 불황의 터널에 막 들어선 상황임을 감안할 때 임금체불은 갈수록 늘어날 수 있다.
극심한 경기불황의 징후들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자금조달을 제때 못해 도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는가 하면 주식이나 펀드, 부동산 등에 투자했다가 급락한 경기로 인해 원금마저 고스란히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다. 빚을 내 ‘내 집 마련’의 꿈은 이뤘으나 이자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금융소외계층으로 전락하는 가계도 나오고 있다. 생활고 비관 자살자, 실직자, 금융소외자, 노숙인 등이 갑작스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런 경제위기의 전형적인 증상들이다.
보통 경제적 약자가 어려운 생활을 누려야만 하는 데는 당사자의 책임이 1차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IMF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작금의 민생고는 경제적 약자로서는 정말 어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불황, 특히 금융 불안에 유난히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서민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정부도 서민층의 고충에 관심을 쏟고 있기는 하나 실질적 대책이 보이지 않으니 문제다. 더구나 이 어려운 판에 정부는 겨울철 난방비를 포함한 빈곤층 지원 예산을 3200억원 이상 삭감했다. 230개 사회복지사업 중 예산을 줄이거나 동결한 사업이 절반에 가깝다. 서민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경제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된다. 서민이 용기를 잃지 않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정책개발이 급하다.


노숙인을 죽이는 제2의 피해
그나마 길 위의 삶을 정리하고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노숙인들이 명의도용 등에 따른 피해로 또다시 거리로 나앉고 있다. 정부나 자치단체가 나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들의 피해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사업에 실패해 노숙을 시작했던 김모씨. 갖은 고생 끝에 작은 월세방을 마련, 새 삶의 시작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떳떳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말소된 주민등록을 회복하고 전입신고까지 마친 그에게 찾아온 것은 금융업체의 체납고지서. 누군가 김씨의 명의를 도용해 대부업체 등에서 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노숙 당시 찾아온 낯모를 사람에게 30만원을 받고 생각 없이 주민등록 등본과 인감증명을 떼어준 게 화근이었다.
전국실직노숙자대책협의회 한 관계자는 “자의든 타의든 이들에게 명의를 빌려 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처벌법상 공범이 된다”면서 “새 삶을 위한 희망마저 꺾어버리는 이러한 실태가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2006년 신용회복위원회 조사 결과 전체 노숙인의 25%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41%가 이러한 유혹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수급자 급증… 겨울 날 일이 걱정” 시름
노숙인·독거노인 등 어려운 계층에게 무료로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 주는 사설 무료급식 기관이 휘청대고 있다. 불황의 여파로 운영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후원금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사설 무료급식 기관은 대략 40여 곳. 하루 제공하는 식사량은 1만 명분을 넘는다. 어림잡아도 3,500명 이상의 식사를 매일 해결해 주는 셈이다. 노숙인 쉼터, 노인복지회관 등 공공 급식시설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이들 기관 몇몇이 문 닫게 되면 사회 취약 계층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다.
사설 무료급식 기관 한 관계자는 “회원 나름 열심히 노력하지만 각자의 면면이 어려워지다 보니 자기 가정 지키기도 벅차하고 있다”며 “외부 지원금 마련차 개최하는 바자회의 수익도 예년보다 한참 떨어져 무료급식 유지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토로한다.
금융위기로 심화된 불황과 그에 따른 실업이 겹쳐 거리로 내몰리는 이들은 더욱 급증할 전망이다. 일부 기관들은 “금융위기, 일용직 시장 불황 여파가 올해부터 가시화되면 공식 통계만으로도 노숙인 수가 현재의 1.5~2배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노숙인을 위한 노력
노숙인들의 겨울나기에 각계각층의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시가 겨울철을 앞두고 올 3월 15일까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동절기 보호 대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우선 현재 460명 수준인 특별자활사업 대상자를 580명으로 늘려 노숙인들이 소득원을 마련하는 발판으로 삼도록 돕기로 했다.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에 참여해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노숙인들을 위해서는 겨울철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16개 반 48명인 거리상담반도 16개 반 77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거리 노숙인들을 1대1로 만나 쉼터 입소를 유도하게 된다.
낮에만 운영되던 서울역 상담소는 24시간 가동된다. 알코올중독 및 정신질환 노숙인을 위한 상담·재활프로그램도 가동된다. 쉼터, 상담보호센터 입소를 꺼리는 노숙인들을 위한 쪽방(10곳)과 집단생활공간(2곳) 등 응급구호방도 2월 28일까지 운영된다.
시 관계자는 “노숙인들이 좀더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특별보호대책 추진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 9월 말 현재 서울시내 노숙인은 총 2929명으로, 이 중 652명이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역이 249명으로 가장 많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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