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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대구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대구[3]
1960년대에 다시 등장한 오리엔트레코드사의 미스터리
2021년 03월 08일 (월) 20:24:11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 1950~60년대 대구 음반사들이 발매한 LP음반들

머리, 양복, 구두를 전국에서 제일 잘하는 곳, 대구는 또한 전국 도시 중 막걸리를 가장 많이 마시는 곳이기도 하다. ‘서민의 술’을 즐기는 정 넘치고 전통을 중시하는 곳인 것이다.

대구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대구는 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지만 서울, 부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구 출신 가요인이나 노래는 적다. 대구에 세워져있는 대중가요 관련 노래비도 ‘비 나리는 고모령(현인)’, ‘능금 꽃 피는 고향(패티김)’, ‘빨간 마후라(쟈니브라더스)’ 그리고 새롭게 부각된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정도다. ‘문화도시 대구’라는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셈이다.

그러나 한때 대구가 우리나라 가요계의 중심에 서서 우리나라 가요의 흐름을 이끌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 사상 최악의 침체기였다고 평가되는 6.25 한국전쟁 시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덜 받았던 탓에 음반 산업과 함께 공연이 꽃피울 수 있었다.

대구를 소재로 하여 전 국민에게 애창됐던 노래들을 살펴보며 ‘대구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대구’, 그리고 ‘노래 속에 나타난 대구사람’의 모습을 살펴본다. 그 세 번 째, 1960년대의 대구 음반사들을 살펴본다.

글 l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1950~60년대 대구 음반사들이 출시한 SP음반들

휴전 이후 50~60년대 대구 가요계를 이끈 대구 음반사들, 파라마운트...

휴전 이후 대구에는 파라마운트, 애호(아카데미), 평화 그리고 오리엔트레코드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파라마운트레코드사는 대구 출신의 가수 이다향(본명 이성진)이 설립한 음반사다. ‘센티멘탈 기타(1956년)을 발표한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파라마운트를 통해 영화 ‘내 사랑 그대에게(하한수 감독, 1959년)’의 주제가인 ‘날이 가고 달이 가고(유호 작사, 만리종 작곡, 이다향 노래-이하 작사, 작곡. 노래 순)’를 비롯해 ‘밤마다 꿈마다(최랑, 송성운, 이다향)’, ‘서울의 스윙(이철수, 송운선, 이다향)’ 등을 발표했다.

음반 기획을 비롯한 문예부 일은 부산에서 대구로 무대를 옮긴 작곡가 송성운(이후 송운선으로 개명, 본명 송성덕)이 맡았다. 그는 파라마운트에서 문예부 일을 보며 ‘가야금 열두줄(이철수 작사, 황금심 노래)’, ‘한 많은 첫사랑(이철수 작사, 황금심 노래)’, ‘피고 지는 사랑(이철수 작사, 남성봉 노래)’ 등을 발표했다. 이 음반들은 이보다 먼저 부산에 있던 흥아레코드를 통해 출반되었던 노래들이다.

“흥아레코드는 부산에서 개인이 제작했던 음반사였죠. 지금으로 치면 PD메이커였는데 국제시장에서 음반장사를 하던 재력가, 이희도씨가 개인적으로 제작했어요. 대구 파라마운트에서 재발매 했는데 당시는 2채널 시대로 내가 밴드스코어(band score, 총 악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 (사진 위) 좌측부터 작곡가 한복남, 전오승, 조춘영, 이명희, 작사가 반야월. (사진 아래) 아레 좌측부터 장세정, 신카나리아, 여대영, 황금심, 왕숙랑, 손석봉, 위 좌측부터 김용대, 백난아 등

송운선은 이다향으로 부터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던 가수 박재란을 소개받았다. 당시 박재란은 대구방송국 경음악단장으로 활동하던 작곡가 김학송(본명 김명순)으로부터 ‘코스모스 사랑’라는 곡을 받아 막 취입을 마친 무명가수였다.

“한창 젊었을 때지요. ‘리라꽃 비련(손로원 작사, 박재란 노래)’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메디움 샤플 리듬을 시도했어요. 당시 앞서가는 새로운 리듬이라 하면 룸바, 탱고 정도였죠. 이 ‘셔플’이라는 단어도 영어사전까지 찾아가며 알아낸 것입니다.”

이렇듯 시대 흐름에 발맞춰가던 파라마운트는 ‘아리조나 카우보이(명국환)’, ‘맘보는 난 싫어(나애심)’, ‘굳바이(배호)’, ‘파란 대문집 사내(김상희)’를 비롯해 다양한 가수들의 음반을 발매한다. 김향미, 나애심, 명국환, 박재란, 박재홍, 배호, 안다성, 위키리, 윤일로, 이금희, 이시스터즈, 한정일 등등...이 그들. 취입은 주로 서울 남대문에 있던 오아시스 녹음실을 통해 이루어졌다. 녹음기사는 최성락.

파라마운트가 제작한 음반들을 살펴보자면, 먼저 초유의 히트를 기록한 ‘아리조나 카우보이(김부해, 전오승, 명국환)’를 비롯해 ‘맘보는 난 싫어(유광주, 전오승, 나애심)’, ‘굳바이(김광빈, 김광빈, 배호)’, ‘망각의 사나이(한정일, 성호민, 한정일)’, ‘파란 대문집 사내(호심, 성호민, 김상희)’. ‘숙명의 사랑(호심, 김성근, 박재홍)’, ‘두메산골(반야월, 김광빈, 김해광)’, ‘알아주세요(월견초, 김성근, 이금희)’, ‘사랑의 화살(김광빈, 김광빈, 배호)’ 등등... 파라마운트 음반 발매는 1966년까지 이어진다.

▲ 대구 파라마운트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들

아카데미레코드사로 명맥을 이어가는 애호(AEHO)레코드

애호(AEHO)레코드사 또한 1960년대 대구 음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음반사다. 설립 초기 SP(축음기 음반)로 발매했던 ‘체리핑크 맘보(현인)’, ‘초록포장(박재란)’, ‘신혼여행(차은희)’, ‘당신이 가신 뒤에(심연옥)’, ‘미망인 에레지(황순덕)’, ‘애인도 아니면서(윤일로)’ 등을 출시했던 애호는 5.16 직후 문예부장으로 작사가 호심(이후 박대림으로 개명, 본명 박영환)을 영입하면서 상호도 애호에서 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꾼다. 1961년도의 일이다.

성주 태생인 호심은 1956년 ‘꿈에 본 대동강(박재홍, 나포리레코드)’의 작사가로 데뷔한 야심찬 문학청년. 대구의 재력가, 대구양행 박성출 사장의 차남이기도 하다.

“5.16이 나고 얼마 뒤, 대구의 애호레코드 김영수 사장이 문예부 일을 도와달라고 해요. 그래서 다시 고향 대구로 내려갔지요. 애호는 사무실 없이 칠성동 철둑길 옆, 김영수 사장의 집에서 음반사 일을 보았습니다.”

애호레코드 역시 대구에서 10인치 LP시대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애호(아카데미)를 통해 발매된 10인치 음반들을 살펴보자면, ‘가슴을 열어놓고(김학송, 김학송, 윤일로)’, ‘흘러간 옛날(이춘우, 야산월, 송민도)’, ‘푸른 목장(호심, 이병주, 전해인)’, ‘브라운 드레스(호심, 이병주, 윤일로)’, ‘잊어야할 과거사(남보원, 김일광, 박재란)’, ‘하늘은 푸르다(남해춘, 남해춘, 김용만)’, ‘청춘 나그네(김성용, 김성용, 박재홍)’, ‘심청전(호심, 이병주, 김효순)’, ‘비 나리는 목포항(호심, 이병주, 김광남)’, ‘나그네 사십(호심, 이병주, 강남달)’, ‘돈이면 최고냐(추월성, 추월성, 구월성)’, ‘여수행 최종연락선(월견초, 김성근, 조일호)’, ‘시악산에 바친 사랑(장영일, 김화영, 남신)’, ‘명랑한 신혼여행(동해풍, 김현, 차은희)’ 등. 취입은 대부분 대구방송국(KBS) 건물 녹음실에서 자정을 넘긴 시간을 틈 타 이루어졌다. 반주 지휘는 대구방송 김학송 악단장.

▲ 애호레코드사(아카데미레코드)가 출시한 음반들

애호레코드 사업부(영업)는 속칭 ‘보이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최치수(이후 아세아레코드사 설립자)가 맡았다.

“당시 최치수씨는 철도국에 근무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영업활동하기에 적격이었죠. 우선 전국 어디를 다니든 돈이 안 들었으니까. 아침에 만나면 항상 눈만 빼고 얼굴이 새카매... 기차바퀴를 망치로 두드리며 검사하는 일을 했었지요.” 호심 선생의 회고다.
“정말 부지런한 분이었죠. 만날 때마다 담배 은박지에 가사 한, 두 구절 빼곡히 적은 것을 꺼내서 한 번 봐달라거나 고쳐 달라고 해요. 일종의 가사 동냥을 하는 거지. ‘대전블루스(안정애 노래)’ 가사를 메모해놓은 걸 봤는데 제목이 ‘대전 발 0시50분’이야. 가장 많이 이용당한 사람이 손로원 선생이었어요. 노래 가사 뿐 아니라 나중엔 ‘생일 없는 소년(김용만)’ 음반 재킷까지 그려줬으니까...”

이후 ‘보이소’가 서울 신신레코드(이후 신세기)로 자리를 옮기면서 애호레코드 메인가수 차은희(본명 차은섭)를 데리고 올라간다. 그래도 애호에는 또 다른 간판스타 박재란이 있었다.

똑같은 음반들이 줄줄이, 평화레코드

평화레코드도 대구에 위치한 음반사였다. ‘과거길 오백 리(명국환)’, ‘낙동강 달밤(최숙자)’ 등이 평화레코드 레벨을 달고 출반되었다.

“신성레코드(대표 김화진)에서 발매했던 ‘개나리처녀(최숙자)’ 음반은 나중에 평화에서도 출시되었어요. 평화는 음반사가 아니에요. ‘싹프레스를 하던 곳(음반 찍는 곳)’인데, 제작자가 돈을 안주니까 어떡해. 결국 장씨가 ‘그러면 내가 음반이라도 찍겠다’, 해서 낸 것들입니다.” 호심 선생의 회고다.

“평화는 칠성동 철둑길 옆에 있었어요. 이곳에 음반 관련 회사들이 많이 몰려있던 이유는 음반 찍을 때 석탄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당시 철둑길에서는 때때로 석탄을 주워서 사용할 수가 있었지, 그만큼 영세했던 시절이었어요. 허허...”

1960년대에 다시 등장한 오리엔트사의 미스터리

지난 호에 거론했듯 대구에서 설립된 서라벌레코드사는 설립 1년여 만에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다. SP 음반만을 제작하던 오리엔트 역시 LP 시대로 전환되면서 문을 닫았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다시 등장한 오리엔트(이병주가 설립한 회사와 별개의 음반사)가 나타나, 한동안 대구 음반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60년대 오리엔트에서는 작곡가 이병주, 추월성, 작사가 호심 그리고 가수 강남달, 김광남, 윤일로, 차은희 등 대구 관련 가요인들이 주축이 되어 음반 발매가 이루어졌다. 그밖에 배호 데뷔곡, 송영란, 안다성, 이금희, 방태원까지 등장한다.

전국적으로 화제를 몰고 온 노래 ‘한 달 봉급은 삼천 삼백 원(추월성, 추월성, 백야성)’을 비롯해 배호의 데뷔곡인 ‘굳바이(김광빈, 김광빈)’가 수록된 김광빈 작곡집, 영화 ‘노을 진 들녘’의 주제가(김성화, 강포중, 안다성), ‘사랑은 수수께끼(추월성, 추월성, 박재란)’, ‘가버린 데리샤(호심, 이병주, 라운)’. ‘빨간 브라우스의 여인(월견초, 김학송, 이다향)’, ‘노병은 사라지고(김진수, 성호민, 안다성)’, ‘그대는 벽창호(월견초, 성호민, 송영란)’, ‘이 밤도 웁니다(김성화, 강포중, 이금희)’, ‘두메산골(김광빈, 김광빈, 김해광) 첫 발표곡 음반’, 방태원 독집 ‘행복의 메아리(월견초, 추월성, 방태원)’ 등등.

기존의 오리엔트음반사 마크와 로고까지 그대로 사용한 이 LP들은 현 음반 콜렉터들로부터 표적이 되기에 충분하리만치 기획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오리엔트 설립자 이병주 선생의 허락 없이 상호는 물론 회사 마크까지 그대로 사용하며 음반을 제작한 이는 과연 누구일까? 이와 관련해 여러 인물들이 거론되지만, 일단 이 칼럼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계속) NM

[참고자료]
단행본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박성서, 책이 있는 풍경, 2010년), ‘大邱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大邱’(한국가요작가협회보 가요마을, 2005년 겨울호).

▲ LP시대에 대구 오리엔트레코드가 출시한 음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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