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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부산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부산[4] 휴전 이후
‘이별의 부산정거장’에서 ‘돌아와요 부산항’까지
2020년 12월 07일 (월) 19:41:52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부산은 도시 천체가 노래 소재로 더없이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는 낭만적인 도시다. 산, 바다, 도시가 어우러져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부산 곳곳이 멋과 낭만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시대를 떠나 부산은 노래의 소재로 각광받았다.

특히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임시수도 역할까지 담당했던 이곳은 피난민들의 ‘제2의 고향’이자 동시에 우리 대중가요 속에 ‘또 하나의 고향’으로 자리했다.

전시 수도이자 당시 우리나라의 음악의 산실이었던 부산의 대중가요 활동은 우리나라 대중음악, 그 자체였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대한민국 가요의 맥을 이었다

이후 부산은 우리나라 제2도시로 면모를 갖춘다. 부산을 소재로 하여 전 국민에게 애창됐던 노래들과 노래 속 부산사람의 모습을 살펴본다. 그 네 번 째. 휴전 이후 ‘부산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부산’.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1959년 부산mbc 개국 당시 사옥과 임해 3원방송 ‘바다에서 만납시다’ 공개방송 현장

한때‘부산에서 히트해야 전국에서 히트한다’는 말까지 생겨

휴전 이후 부산은 우리나라 가요계 인맥이나 음반 판매 흐름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 부산 경남지역에서만 전국 음반 판매율의 60%를 장악했던 시절도 있었다. 때문에 음반사 측에서는 신곡이 나오면 먼저 부산, 경남지역부터 반응을 본 뒤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아울러 공연, 쇼 흥행의 승부처이기도 했던 부산에는 1959년 4월15일, ‘만인의 라디오’, ‘자유로운 라디오’를 표방한 MBC가 개국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민간방송이 탄생한 것이다. 부산MBC는 그로부터 2년 후인 61년, 서울MBC를 개국시킴으로써 전국 방송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부산 가요의 메카, 한국 최초 순수 민간방송 부산MBC

‘그랜드쇼’와 납량특집 공개방송 ‘바다에서 만납시다’로 기억되는 부산MBC는 개국과 더불어 부산가요의 메카로, 또 전진기지로써 가요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국영방송 일원화 체제에 등장한 상업방송 부산MBC는 다이얼 선택의 자유를 주었고 그러한 만큼 청취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 전략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기획, 부문별 편성비율도 음악이 45%로 가장 많았다. 단순히 전파를 통해서 가요를 방송하는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과 쇼 무대를 만들어서 가수가 설 자리를 제공하고 가요제를 열어 적극적으로 가수를 발굴해내고 키워내며 가요 창작의 중심에 까지 위치하며 명실상부한 산실의 기능을 담당했다.

공개방송 ‘그랜드쇼’는 부산MBC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다. 개국 첫 해 국제극장에서 개최된 ‘제1회 문화방송제’를 시작으로 해마다 개최해온 대형 특집쇼. 65년부터 명칭을 ‘창사 기념 시민 위안무대’로 개칭했고 다시 66년부터는 ‘KU 선정 10대가수상’의 제정과 함께 시상공연으로 바꾸어졌고 69년부터 ‘MBC 그랜드쇼’ 그리고 ‘MBC 대행진’ 등으로 명칭이 바뀌어왔다.

라디오 시절, 납량특집 ‘바다에서 만납시다’도 큰 호응을 이끌었던 인기공개방송. 1960년대에 송도와 광안리, 해운대 해수욕장에 각각 비치 스튜디오를 설치해 ‘납량특집/바다에서 만납시다’를 진행, ‘송도-광안리-해운대-주조정실’을 잇는 3원 방송을 엮어 피서객과 애청자의 인기를 모았다.

또한 개국 초기, 전속가수 제도를 실시해 제1기 전속가수 양영철을 시작으로, 김지곤(2기), 정풍송, 진송남(3기), 김양화, 김준규(4기) 등 실력파들을 배출시켰다. 이 전속가수제는 67년, 제7기까지 이어져왔으며 사옥 옥상에 있는 다섯 평 남짓한 전속가수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말하자면 소속 가수이기보다 가족이었다.

개국 초창기의 공개방송으로 구성된 가요프로그램, ‘100만원(圓)상금 직장대항가요대전(PD 최광민 ANN 전응덕)', 아마추어 가수 등용문이었던 '톱싱거대회(PD 김영준 ANN 이상호)' 등은 부산MBC의 빛나는 시금석이다. 이 공개방송은 '가요 콩쿠르(화)', ’가요대전(목)', ‘아마추어 스테이지/노래 흉내 콩쿠르(금)'로 편성, 10년 이상 장수했다. 이 공개방송들은 출연 신청자의 참가 열기는 물론 구경하려는 부산시민들로 항도 부산이 출렁거렸다.

이러한 공개방송을 통해 배출된 인물 중에는 가수 남상규, 진송남, 후랑크백, 캐리브룩, 문주란, 신행일, 설운도 등이 있고 작곡가 남국인, 임석호 등도 처음엔 아마추어 가수로 공개방송에 참가했다.

▲ 부산mbc 현재 사옥

 
우리나라 최초의 CM송을 탄생시킨 부산MBC

우리나라 CM송의 역사 또한 부산MBC의 역사이기도 하다. 부산MBC가 만든 최초의 CM송은 차차차 리듬의 '진로소주(손형식 사, 허영철 곡)'를 비롯해 도돔바 리듬의 '동산유지 코티비누(이수열 사, 허영철 곡)' 민요조의 ‘금곡소주, 청로소주(이용태 사, 허영철 곡)’ 등이다.

이 노래들은 공개방송 무대에서 전속가수들이 직접 불렀고 또 '캬~!'하는 효과음은 탤런트이자 부산MBC 성우 1기 출신인 전운이 맡았다. 이 CM송들은 제품이 가진 핵심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서술해서 운(韻)을 만들어내는 전근대적인 가사가 주를 이루었다.

작곡자 허영철은 당시 부산MBC 경음악단장. 조용필이 불러 널리 알려진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처음 부산MBC 드라마 주제가였다.

대한민국 가요계를 이끄는 부산 가요 인맥

가요계 인맥 또한 작사, 작곡가들의 경우 손목인(진주), 박시춘(밀양), 반야월(마산), 이재호(진주), 백영호(부산)로, 가수는 고복수(울산), 남인수(진주), 현인(부산)으로 시작하는 계보를 형성, 부산 경남인들이 가요에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부산 출신, 혹은 부산을 배경으로 입지를 다진 가요계 인물들의 계보를 훑어가다보면 한국가요사의 거대한 밑그림이 그려질 정도다.

먼저 부산 출신 가수들만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김상국, 김상진, 김수희, 김승덕, 나훈아, 높은음자리, 문성재, 문주란, 바다새, 설운도, 신세영, 신행일, 썰물, 양병집, 어우러기, 이상우, 은방울자매(박애경, 김향미), 정향, 정훈희, 진송남, 차은희, 최백호, 케리브룩, 하춘화, 한대수, 현인, 현철 그리고 해와달, 량현량하, 장미여관 등이 쉽게 떠오른다.

작가군(群) 역시 만만치 않다. 김성유, 김양화, 김종유, 김준규, 박상길, 박성훈, 백영호, 송운선, 야인초, 유영건, 윤익삼, 이시우, 이호섭, 임석호, 정풍송, 천봉, 최종혁, 한산도, 허영철 등등, 한국 제2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많은 가수와 작사, 작곡가를 배출해냈다.

“부산은 위치적으로 바다를 끼고 있어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 좋은 가수 또한 많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오존(O3)이 사람의 폐를 깨끗하게 만들고 폐활량을 좋게 만들기 때문에 목포와 마찬가지로 환경적으로 매우 좋은 조건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죠.”

▲ (사진 위) 부산 제1회 국제가요대상 시상식을 마치고. 가수 고복수, 황금심 등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중) 작곡가 백영호를 중심으로 한 부산 가수들. 신해성, 백설희, 은방울자매(박애경, 김향미), 오주스, 정향, 방운아 등이 함께 자리했다. (사진 아래)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곡가 김종유, 작사가 야인초, 가수 남백송, 정향, 최정자 등의 한 때

부산mbc PD 출신 작사가 김양화씨의 말이다. 이를테면 김치가 바람, 땅, 물, 공기에 의해 맛을 결정하듯 부산은 위치적으로 좋은 가수와 노래가 많이 생겨날 자연의 환경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투박한 질그릇에 비유되는 부산사람들

‘전화요금이 제일 적게 나오는 곳이 경상도다.’ 최근 회자되는 조크 중 하나다. 그만큼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노래 속에 나타난 부산, 경상도사람들의 이미지 역시 다소 무뚝뚝하고 억세지만 순박하고 정 많은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김상희의 ‘경상도 청년’이 그렇고 또 김용만 백야성의 ‘왈순아지매’나 남일해의 ‘부산사나이’가 그렇다.

또한 부산 사람하면 꼭 투박한 질그릇에 비유하니 내심 속이 불편할만하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놓아도 잘 깨지지 않고, 세련된 멋은 없어도 소박하고 솔직한 맛이 있는 질그릇. 바로 부산사람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비릿한 생선 내음과 억센 이미지의 자갈치 아지매들 목소리. 지금은 현대적 시설로 깔끔하게 정리된 자갈치 시장이지만, 여느 수산물 시장과 다른 느낌이 있다. 오랜 세월, 거친 해풍을 맞아가며 좌판에 쪼그리고 앉아 세월을 보내온 자갈치 아지매들의 생명력이 스며있기 때문일까?

부산 사람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여겨지는 이들에게서 억척스런 삶의 모습도 보인다. 바로 이들의 모습이 우리 가요에도 부산 사람의 이미지로 반영돼 온 것 아닌가 싶다. 경상도 남자들은 이렇게 무뚝뚝하고 멋없지만 정 깊고 의리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피란 시절, 피란민들에게 보여준 부산시민들의 정을 아직도 잊지 못 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인정 많은 도시다.

‘부산 노래, 노래 속 부산’을 찾아서

▲ 피란민들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땅, 종착역인 부산역. 휴전 직후 대화재로 소실된 부산역의 옛터, 그리고 오륙도에 세워진 ‘부산갈매기’ 노래비를 찾은 필자

‘지구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은 부산사직구장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야구 열기 못지않게 노래를 사랑하는 곳 또한 부산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불리는 응원가가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부산 갈매기’다. 특히 ‘부산 갈매기’는 부산사람을 지칭하는 용어가 된지 오래다.

부산을 노래한 대표적인 노래들 또한 일일이 거론하기가 쉽지 않다.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면,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준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박시춘/현인-이하 작사/작곡/노래 順)’를 비롯해 ‘이별의 부산정거장(유호/박시춘/남인수)’, ‘울며 헤진 부산항(조명암/박시춘/남인수)’, ‘해운대 엘레지(한산도/백영호/손인호)’, ‘마음의 부산항(허민/한복남/허민)’, ‘추억의 영도다리(이철수/이재현/윤일로)’, ‘항구의 사랑(최치수/김부해/윤일로)’, ‘경상도사나이(김운하/박시춘/방운아)’, ‘용두산 엘레지(최치수/고봉산/고봉산)’, ‘잘 있거라 부산항(김용만/김용만/백야성)’, ‘비 나리는 남포동(김용만/김용만/백야성)’, ‘부산은 내 고향(홍기표/김원출/김용만)’, ‘안개 낀 부산항(길옥윤/길옥윤/남일해)’, ‘눈물의 영도다리(김화랑/김부해/안정애)’, ‘부산의 밤(천지엽/최녹영/안다성)’, ‘저무는 국제시장(김동민/한복남/황정자’), ‘광복동 거리(신중현/신중현/신중현)’, ‘핑크빛 리본의 카드(나화랑/나화랑/남일해)’, ‘남포동 마도로스(반야월/김화영/원희옥)’, ‘자갈치아지매(김상국/김상국/김상국)’, ‘자갈치 아지매(나훈아/나훈아/나훈아)’, ‘해운대야 말해다오(최치수/김종유/신가야)’, ‘칠일 간 부산항(김종유/김종유/정향)’, ‘돌아와요 부산항에(황선우/황선우/조용필)’, ‘부산갈매기(김중순/김중순/문성재)’, ‘부산가시내(김병걸/김다양/진송남)’, ‘이별의 부산배(오석광/김영광/태현철)’, ‘남포동야곡(김종유/김종유/안다성)’, ‘자갈치 또순이(이호섭/안치행/문희옥)’, ‘광안리(최성수/최성수/최성수)’, ‘아름다운 해운대(이주용/최익봉/설운도)’, ‘한 많은 오륙도(석여인/이정화/차은희)’, ‘부산아가씨(김동찬/차민호/김상진)’, ‘님을 보낸 부산항(손석/이인권/나훈아)’,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나훈아/나훈아/나훈아)’, ‘남포동 블루스(신상호/신상호/김수희)’, ‘청사포(최백호/최백호/최백호)’ 등등... 많은 노래들이 쏟아져나왔다.

이 노래들 중에는 전국적으로 애창된 노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노래도 있다. 물론 거론하지 않은 노래는 이보다 훨씬 많다. 부산을 테마로 한 노래들은 격동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꾸준히 등장, 당시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기에 시민들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전 국민들로부터 불리어지는 부산노래가 그만큼 많은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노래비가 곳곳에 세워진 노래도시, 부산

▲ 휴전 이후 부산을 노래한 음반들

부산은 ‘노래도시’라 할 만큼 곳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영도다리 입구와 송도해수욕장에 세워진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 해운대에 세워진 ‘해운대 엘레지’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 중앙동 40계단의 ‘경상도 아가씨’와 오륙도에 세워진 ‘부산갈매기’ 노래비, 그리고 해운대구에 있는 ‘동백아가씨’ 노래비는 물론 ‘이별의 부산정거장’, ‘용두산 엘레지’ 노래비 건립 또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제금 대중가요 속 부산 이미지는 갈수록 젊어지는 듯하다. 6.25 한국전쟁 당시 피란시절, ‘경상도아가씨’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40계단이나, ‘굳세어라 금순아’의 영도다리와 피난민이 모여 살던 부산 남포동 거리, 각도 사투리가 모여서 소란했던 국제시장, 그리고 ‘이별의 부산정거장’에 등장하는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 등등... 그러나 이제 대중가요 속 부산의 이미지는 사랑과 낭만이 있는 곳으로 그려진다. 특히 여름철 바캉스 시즌을 통해 전 국민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해운대, 광안리 같은 지명을 통해 젊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탈바꿈되고 있는 것.

일 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도시, 부산. 부산바다축제, 국제록페스티벌, 광안리 불꽃축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대형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는 부산은 2005년부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부산바다축제 기간 동안 ‘현인가요제’를 출범시키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방송 3부작/부산 노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WBS-FM 원음방송)’를 진행하고 있는 필자.

이제 서울에서 두 시간 삼십여 분만에 주파하는 KTX 시대를 맞아 지역문화의 자생력과 중앙과의 연결성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여 부산이 지역성을 탈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부선과 부관연락선이 머물던 일제침략의 상징으로, 6·25전쟁 때에는 피란민들에게 제2의 삶의 터전이 돼주었던 부산. 곳곳에 밟히는 것이 서민의 삶이요 애환인 이 도시는 그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메카였다.

이렇듯 우리 대중음악사에 차지하는 부산노래가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서민의 응어리진 마음을 달래주고 역사의 부침 속에서 아픈 생채기를 치유해주었던 노래들. 이 노래들을 살펴보면 제각각 그 시대를 대표하며 당시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해왔다. 어쩌면 이 노래들이 부산의 역사보다 더 부산답게, 대중들에게 깊게 각인된 부산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도시 전체가 노래 소재이기에 부산의 심장이 맥박치고 있는 한 부산을 소재로 한 노래들은 계속되어질 것이다. 전쟁가요의 산실이자 피란시절 임시수도를 거쳐 이제금 일 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도시로 우뚝 선 부산, 이 부산의 멋에 걸 맞는 노래들이 더 많이 나오길 한편 기대해본다.

[참고 자료] 단행본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책이 있는 풍경, 박성서 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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