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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야 할 지점
2020년 12월 06일 (일) 23:10:43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이은주한의사 / 생태주의 건강 성생활      

21세기의 지구가 인류문명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견해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물질문명의 측면에서 방향전환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정신문명의 측면에서도 어쨌든 지금 상항을 변혁하지 않고는 더 이상 행복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은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몇천 년을 그랬는지, 혹은 몇만 년을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로부터 시작되어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로 이어진 인간의 연대기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쉬지 않고 흐르는 물과 같고, 쉬지 않고 달리는 마라톤 레이스와도 같다.
냇물은 흘러 강으로 가고,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간다. 물은 중력의 안내를 받아 쉬지 않고 흘러가지만 바다에 이르러선 흐름이 느려지거나 멈춘다. 더 이상 피곤하지 않을 휴식처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어디서 멈추리라는 약속이 없다. 혈통을 따라, 문화전통을 따라, 그 삶은 수천 년 넘게 이어져 왔다. 이것은 끝이 없는 마라톤과도 같았다.
강물과 다른 점은 또 있다. 강물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속도가 완만해지는데, 인간이 시간은 오히려 점점 빨라지기만 했다. 갈수록 피로가 가중되고 긴장도는 높아진다. 잠시 한눈 팔 틈도 없이 인간의 시간은 질주해 왔다. 마라토너의 레이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정해진 거리를 임의로 나누어 구간별로 속도를 높이거나 줄여 조정하면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만일 그가 달릴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전력질주만 한다면 마라토너는 절반도 뛰지 못해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인류 문명의 레이스는 이러한 조절능력을 잃어버려 기진맥진한 마라토너와도 같은 처지에 이르른 것이다.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고 어디가 목표점인지도 모른다. 멈출 수도 없다.
한 세대가 달리고 그 다음 세대가 달리고 또 그 다음 세대가 레이스를 물려받는다. 우리의 앞 세대는 숨찬 고개를 달려 올라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무언가가 있을 거야’라고. 그것은 그들의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환상이었다. 그 환상 속의 목적지는 한 때 ‘하늘나라’라 불렸고 ‘유토피아’라 불리기도 했고, 종교마다 민족마다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되는 어떤 명칭들을 전수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21세기를 맞은 지금의 세대는 이것이 ‘목적지 없는 맹목의 레이스’일 뿐이라는 걸 눈치 챈 세대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이 세대는 지구 밖으로도 나가 보았고 태양계 밖까지 날려 보낸 관찰위성으로부터 바깥 세계에 대한 보고도 받았다. 해저 깊은 데까지도 탐사선이 내려가 생생한 목격영상을 가져온다. 어디에도 인간의 목적지는 따로 있지 않다. 종교의 최고 지도자들이 혹시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정신 영역의 경지도 이제는 꽤나 가시화되었다. 거기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더 탐구할만한 미지의 세계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역시 유토피아와 같은 무엇이 따로 있지는 않음이 분명해졌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기술문명이 창조하는 어떤 기술로도 유토피아와 같은 완전한 다른 세계(인간의 목적지)를 찾아낼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에 흥미를 잃고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이상의 레이스를 물려받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선택일 지도 모른다. 자연(기상환경)은 요동치며, 낯선 질병들이 인류에게 위협을 가해온다. 조류(鳥類)가 병에 걸리고 가축들이 바이러스에 희생되고, 이제 인류도 안전을 위협받는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인류는 문명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회피할 수가 없다.
어떻게 가능할까, 이후 인류의 운명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혁신적으로, 이 ‘목적지 없는 레이스’를 중단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무조건 멈춤’ 같은 것은 가능하지 않다. 시간은 허공을 날아가는 비행기와도 같아 ‘일단 멈춤’이 허용되지 않는다. 달리며 생각해야 하고 달리며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인류는 그동안 지나온 역사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와 비판적 고찰의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는 점이다. 역사와 종교와 과학이 지금까지 그 일을 해왔다. 이 축적된 지혜가 미래의 선택에 유용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파괴적 개발을 중단고 맹목적인 탐욕과 경쟁을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지금 우리의 과제다.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한번 머리를 맞대 보자. 일단 지금까지 익숙했던 가치관, 습성의 패러다임을 다 바꿔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NM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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