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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으로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 빚다
2020년 12월 06일 (일) 21:35:11 윤담 기자 hyd@newsmaker.or.kr

일찍이 화가이자 도예가였던 폴 고갱의 “도자기는 지옥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말처럼 도자기는 땅속의 보물인 좋은 흙(地)은 불과 공기(天)의 힘을 빌은 도예가(人)의 혼으로 세상에 나온다.

윤담 기자 hyd@

‘명품(名品)’은 말 그대로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이다. 때문에 명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하는 대상에 붙여져야 할 쉽지 않은 자격이다. 장인 정신과 최고 기술이 만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인정받은 명품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런 면에서 장인들의 수작업과 뛰어난 기술력, 소량 생산이라는 명품의 철학은 우리 공예와 참 많이 닮아 있다.

도자기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명인
‘한도요’의 대표 서광수 명장의 행보가 화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서광수 명장은 무형문화재 사기장 41호이자 2003년 도자기공예분야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인물이다. 도자기의 성지(聖地) 이천에서 태어난 서광수 명장은 자연스럽게 도자기와 가까워졌고, 초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도자기 외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 서광수 명장

1961년 14세 어린 나이에 ‘백자의 대가’로 불리는 도암 지순택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도자기 기술을 사사한 서광수 명장은 11년의 세월 동안 도자기 제작의 기본 기술과 성형, 조각, 소성, 유약 등을 만드는 법을 모두 전수받았다. 이후 1976년 지순택 선생의 문하를 떠나 당시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스카우트로 10여 년간 이 전 부장이 운영하던 ‘도평요’의 요장으로 일을 하며 자신의 색채를 가꿔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986년 이천시 신둔면에 한도요의 문을 열고 줄곧 자신의 예술성을 갈고 닦는 데만 매진해왔다. 그가 제작하는 작품들은 모두 전통가마에 소나무로 불을 지피는 전통방식으로 빚어지는데 전통 장작가마는 기온과 습도에 민감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장작가마의 성공률은 고작 30%에 불과하다. 화목으로 화력이 센 강원도 소나무만 쓰기 때문에 가마에 한번 불을 지피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동 백토·서산 물토·양구 백토와 전국에서 장석, 대리석, 석회석을 모아 태토를 만들고 유약을 만드는 데는 막대한 비용은 물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정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명장이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도자기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겠다는 도예가의 장인정신이다. 서광수 명장은 “전통식 가마 방식은 정해진 것은 없다. 불의 세기와 가마 안에서 기물의 위치에 따라 어떤 빛깔을 낼지 저로서도 알 수가 없다”면서 “요즘 생활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전기나 가스 가마는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상품을 만들 때 적합하다. 이 방식으로 만들면 백이면 백 모두 똑같다. 그러나 전통가마에서는 백이면 백 개가 모두 독특하다“오직 저의 간절한 바람과 자연의 오묘한 조화가 만들어낸 은은한 우리 전통식 도자기 빛깔은 기계식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흙 반죽, 물레 성형, 조각, 초벌과 재벌 등 수많은 땀과 노력이 깃들어야만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흙을 고르고 반죽을 만들어 물레 성형을 마친 뒤 조각하거나 그림을 입힌 후 유약을 발라 초벌과 재벌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만 3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탄생하는 작품이 모두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색이 이상하거나 조금만 흠이 있어도 용납하지 않는다. 실패한 도자기는 망설임 없이 깨뜨린다. 서 명장은 “도자기를 깰 때 3개월 동안 애지중지 만든 건데, 속이 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면서 “그러나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깨버릴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전통방식 고수하며 세계 최고의 달항아리 빚다
서광수 명장은 특히 우유 빛깔의 맑은 색을 띤 ‘무지백자 달항아리’에 최고의 대가로 손꼽힌다. 서 명장은 ‘무지백자 달항아리’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에 이름을 올렸다. 위 아래로 나누어 제작한 다음 합쳐 만들어진다는 달항아리는 예부터 여자의 잘록한 허리를 닮았다 하여 선비들에게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서 명장 또한 전통을 고수해오며 잡티 없는 새하얀 달항아리를 만드는데 집중해왔다. 찻잔 크기의 작은 달항아리부터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크기까지, 그의 모든 정성으로 빚어낸 달항아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당연 최고의 도자기로 대우받는다. 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남과 북이 통일을 염원하는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당시 그는 커다란 달항아리를 아래·위를 나누어 만들어 두 개를 이어 붙여서 만들었는데, 이는 두 나라가 더 큰 하나로 완전하게 거듭남을 상징한다.

서광수 명장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20여 회가 넘는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9년에는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한국도자기 명장 특집으로 서 명장을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이로 인해 ‘한도 서광수를 사랑하는 일본인 모임’이 결성됐으며,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신의 경지’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 국립박물관에는 서 명장의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외국 정상 등 주요 인물들도 그의 작품을 선호한다. 이러한 앞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전통도예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목표라는 서 명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묵묵히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으로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는 중이다. 서광수 명장은 “도자기는 내 인생이다. 항상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지금까지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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