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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부산[3] 노래로 돌아보는 부산항 144년
‘울며 헤진 부산항’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까지
2020년 11월 08일 (일) 01:46:06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부산은 도시 천체가 노래 소재로 더없이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는 낭만적인 도시다. 산, 바다, 도시가 어우러져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부산 곳곳이 멋과 낭만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시대를 떠나 부산은 노래의 소재로 각광받았다.
특히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임시수도 역할까지 담당했던 이곳은 피난민들의 ‘제2의 고향’이자 동시에 우리 대중가요 속에 ‘또 하나의 고향’으로 자리했다.
전시 수도이자 당시 우리나라의 음악의 산실이었던 부산의 대중가요 활동은 우리나라 대중음악, 그 자체였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대한민국 가요의 맥을 이었다
이후 부산은 우리나라 제2도시로 면모를 갖춘다. 부산을 소재로 하여 전 국민에게 애창됐던 노래들을 살펴보며 부산의 가요, 가요 속에 나타난 부산을 살펴본다. 그 세 번 째. 노래로 돌아보는 부산항.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부산항 개항 141주년 기념/노래로 돌아보는 부산항’ 심포지움을 진행하고 있는 필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세미나실, 2017년.

노래로 돌아보는 부산항 144년

부산은 우리나라 제1의 항구도시다. 올해로 부산항 개항 144주년을 맞는다. 지금으로부터 140 여 년 전까지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부산. 이후 부산항은 해외 문물이 들어오고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으로 격동의 시대를 맞이한다. 아울러 그 시간들은 노래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부관연락선을 시작으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는 이민선, 월남으로 파병되던 현장도 바로 부산항이었다. 원양어선과 마도로스로 상징되는 경제적 풍요로움도 함께 했던 시절도 있었다.
부산항을 소재로 한 노래는 많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노래로 가장 많이 불리어진 항구도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시대별로 어떤 노래들이 부산의 역사와 함께 했을까. 부산의 지명이 들어간 최초의 노래는 ‘경부텰도의 노래(경부철도가)’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만들어진 노래다. 최남선이 쓴 이 ‘경부철도가’는 각 행이 정확히 7·5조로 총 67장으로 되어 있다. 스코틀랜드민요 ‘들놀이(Coming Through The Rye, 밀밭사이로)’의 음률에 맞춰 불리어지도록 만들어졌다.

▲ 경부텰도노래(京釜鐵道歌, 신문관 발간/융희 2년(1908년) 발행, 책에는 발행일이 ‘융희 2년 3월 20일 발행, 3쇄 융희 2년 5월 10일 발행’으로 명기되어 있으나 이는 처음 발표 당시 등사판으로 3쇄까지 배포된 날짜를 기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추론은 이듬해 발생한, 이른바 ‘창가독립운동사건’의 1회 예심조서에 기록된 날짜에 의거한 것으로 따라서 이 책의 정확한 발간날짜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노래가 대정 4년(1915년) 일본 총독부에 의해 금지된 기록으로 보아 총독부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발간일을 처음 배포일로 기록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따라서 1915년 이후 신문관이 문을 닫던 1922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책에는 각 관련사진과 한글단어의 주석을 달아 출간되었다. 총 47쪽

1930년대 이별의 정한을 그린 ‘연락선은 떠난다’

1937년에 발표되어 크게 히트한 노래 중 하나가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이다. 이 노래는 부산의 ‘부관연락선(関釜連絡船, 광복 이전까지는 관부연락선이라 부름)’을 통해 이별하는 슬픔을 그렸다.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이 부관연락선에서의 이별을 노래한 ‘연락선은 떠난다’는 이후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일본어로 ‘연락선의 노래(連絡船の唄)’라는 제목으로 번안돼 불릴 정도로 일본에서도 크게 히트했다.
 
쌍고동 울어 울어 연락선은 떠난다/잘 가소 잘 있소 눈물 젖은 손수건/진정코 당신만을 진정코 당신만을 사랑하는 까닭에/눈물을 흘리면서 떠나갑니다 (아이 울지 마세요)/울지를 말아요.
파도는 출렁 출렁 연락선은 떠난다/정든 님 껴안고 목을 놓아 웁니다/오로지 그대만을 오로지 그대만을 사랑하는 까닭에/한숨을 생키면서 떠나갑니다 (아이 울지 마세요)/울지를 말아요.
바람은 살랑 살랑 연락선은 떠난다/뱃머리 부딪는 안타까운 조각달/언제나 임자만을 언제나 임자만을 사랑하는 까닭에/끝없이 지향 없이 떠나갑니다 (아이 울지 마세요)/울지를 말아요. -연락선은 떠난다(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장세정 노래)

1940년대 강제 징용의 아픔, ‘울며 헤진 부산항’

이 부관연락선을 배경으로 1940년에 나온 노래가 바로 ‘울며 헤진 부산항(남인수)’이다. 작곡가이기도 한 박시춘의 기타 반주에 맞춰 남인수가 부른 이 노래는 강제 징용되던 사람들의 애달픈 심정을 그렸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는/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 달빛/이별만은 어렵드라 이별만은 슬프드라/
더구나 정 들인 사람끼리/음~~.
달빛 아래 허허 바다 파도만 치고/부산항 간 곳 없는 검은 수평선/이별만은 무정트라 이별만은 야속트라/더구나 못 잊을 사람끼리/사람끼~리. -울며 헤진 부산항(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전쟁에 징집되거나 혹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등,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정한을 담았다.

▲ 피란시절 백조가극단이 무대에 올린 가극 ‘울며 헤진 부산항’의 한 장면과 ‘칠일 간 부산항’의 가수 정향. (아래) 마도로스 복장만을 고집했던 마도로스 가수 백야성 그리고 가수 방운아(좌측에서 두 번 째)와 함께 한 정향(우측에서 두 번 째)


1950년대 부산항의 역동성을 그린 ‘부산행진곡’

눈물과 이별의 장소이자 상봉의 장소이기도 했던 부산항은 이후에도 노래의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50년대 후반,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점차 벗어나며 대중가요도 본격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해운대 엘레지’나 ‘용두산 엘레지’가 등장할 즈음 부산항의 역동성을 노래한 ‘부산행진곡’이 등장한다.
특히 피란시절, 가수 한복남에 의해 설립된 부산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부산항 관련 노래가 쏟아져 나온다. ‘마음의 부산항(허민 작사, 한복남 작곡, 허민 노래, 1955년 -이하 작사, 작곡, 노래, 연도 순)’, ‘이별의 부산항(소화당, 한복남, 손인호, 1956년)’, ‘아메리카 연락선(이철수, 하기송, 한아랑, 1958년), ‘부산 마도로스(천봉, 한복남, 김용만, 1958년)’, ‘마도로스 기타(이철수, 한복남, 백야성, 1958년)’ 등이다. 이 노래들에는 해운대, 송도, 오륙도 등 부산의 지명들을 직접 등장시키며 항구도시 부산의 정취를 더했다. 이러한 부산항 소재의 노래는 60년대에 들어서도 ‘제삼부두 골목길에 돌아앉은 선술집...’으로 시작되는 ‘마도로스 주장(한산도, 한복남, 김선영, 1962년)’, ‘연락선 처녀(이철수 ’, 한복남‘, 최숙자’, 1964년)’ 등으로 이어진다.
1955년, 역시 피란시절 부산에서 설립된 미도파레코드에서 ‘부산행진곡’이 발표된다. 코로나레코드사 대표이자 미도파레코드사 녹음기사로 활동했던 작사가 야인초(본명 김봉철)가 쓴 노랫말에 박시춘 선생이 곡을 붙여 가수 방운아(본명 방창만)가 노래했다. 방운아라는 이름은 야인초 선생이 지어준 예명이다.

동서양 넘나드는 무역선의 고향은/아세아 현관이다 부산 항구다/술 취한 마도로스 남포동의 밤거리에는/꽃 파는 젊은 아가씨들의 노래가 좋다.
우뚝 선 영도다리 갈매기들 놀이터/물에 든 네온불도 부산 항구다/메리켕 부둣가엔 내일 다시 만나주세요/파자마 입은 아가씨들의 인사가 좋다.
봄바람 동래 온천 여름 한철 송도요/달마중 해운대도 부산 항구다/가느니 못 가느니 종(終)열차의 베르(Bell)가 운다/경상도 사투리 아가씨들의 이별이 좋다. -부산행진곡(야인초 작사, 박시춘 작곡, 방운아 노래)

생전에 방운아 선생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부산바다에 떠있던 배, 즉 'LST의 댄스홀'에서 녹음한 노래라고 밝혔다. 부산시내에서는 전차소리, 자동차소리 등 온갖 잡음이 많아 소음이 거의 없는 바다에 떠있는 배 위에 임시로 천막을 쳐놓고 비교적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취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때 천막이란 담요나 가마니를 임시로 덮은 것을 말한다.
경북 경산 출신의 방운아씨는 대구의 서라벌레코드사 주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서라벌 전속작곡가 백영호 선생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부산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무명시절 부산을 중심으로 무대 공연 활동을 했고 첫 취입곡 ‘마음의 자유천지’도 부산에서 취입했다. 결혼도 부산에서 부산여성과 결혼했으며 또 대표곡 ‘부산행진곡’을 비롯해 ‘부산항구’, ‘부산엘레지’, ‘부산역 이별’ 등을 부산 관련노래를 많이 발표했다.

1950~60년대 마도로스 노래 붐과 가수 백야성

▲ ‘부산항구’, ‘부산엘레지’, ‘부산역 이별’, 가수 방운아 친필악보

가수 백야성은 ‘마도로스 가수’의 대명사다. 히트한 노래 대부분이 마도로스 관련 노래였다. ‘마도로스 부기’, ‘마도로스 도돔바’, ‘잘 있거라 부산항’, ‘항구의 0번지’, ‘마도로스 센타’ 등 마도로스, 바다, 항구, 부산을 배경으로 한 노래들을 특히 많이 발표했다. 만년에는 무대에서 마도로스 복장만을 고집하기도 했다.
마도로스의 꿈과 낭만, 그리고 사랑을 그린 마도로스 노래는 1930~4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해 원양어선의 전성기였던 60년대에 절정을 이룬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미래의 희망을 품고 오대양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사나이들의 꿈과 야망, 그리고 외국문물에 대한 동경을 대신해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마도로스 노래가 좋아 항해사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대한민국 경제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백야성의 대표곡은 ‘잘 있거라 부산항’이다.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미스 김도 잘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온다는 기약이야 있으랴마는/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미스 김도 못있고요 미스 리도 못있어/만날 때는 반가웁고 그리워 해도/날이 새면 떠나야할 마도로스다 마도로스다/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잘 있거라 부산항(손로원 작사, 김용만 작곡, 백야성 노래, 1962년)

가수 백야성의 대표곡이기도 한 이 '잘 있거라 부산항'은 부산공연 도중 숙소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이 노래의 작곡자 김용만씨에 의하면, 함께 공연을 하던 코미디언 백금녀씨의 생일이라 출연진들이 숙소에 모여 조촐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이 때 부산에 온 기념으로 부산 관련 노래를 만들기로 합의를 보고, 서영춘씨와 배삼룡씨가 즉석에서 가사를 쓰고 김용만씨가 곡을 붙였다.
가령 이 노래에서 '미스 김도 잘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라는 부분은 서영춘씨가 쓴 가사고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마는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하는 부분은 배삼용씨가 쓴 것. 그리고 끝부분에서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하는 부분은 김용만씨가 곡을 붙이면서 추가한 것. 2절 가사는 작사가 손로원 선생에게 의뢰해 노래를 완성했다. 다음날 백야성씨가 이 노래를 극장 무대에서 부르자 부산관객들의 반응은 실로 대단했다.

▲ 부산항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수록되어있는 LP음반들


일주일 간의 사랑, ‘7일간의 부산항’

마도로스는 네덜란드어인 매트르스(matroos)가 변형된 일본식 표기로 우리말로는 항해사, 혹은 선장이라 불린다.
‘무역선 오고가는 부산 항구 제 2부두/술 취한 마도로스 이별이 야속더라’로 시작하는 ‘아메리칸 마도로스(김진경, 고봉산, 고봉산, 1963년)’. 일주일간의 사랑을 그린 ‘칠일 간 부산항(야인초, 김종유, 정향, 1966년)’도 등장했다. 노래를 만든 이들은 주로 부산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부산인들이었다.
마도로스가 부산에서 정박하는 시간은 보통 1주일, 그 사이 남포동, 광복동 일대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사랑과 낭만이 그린 노래도 속속 등장했다.

무역선 오고가는 부산 항구 제 이부두/술 취한 마도로스 이별이 야속더라/닻줄을 감으면은 기적이 울고/뱃머리 돌리면은 사랑이 운다/아---- 항구의 아가씨/울리고 떠나가는 버리고 떠나가는/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
꽃물결 넘실대는 부산 항구 제 이부두/술 취한 마도로스 항구가 야속더라/깃발을 올리면은 기적이 울고/테프가 끊어지면 사랑이 운다/아---- 항구의 아가씨/울리고 떠나가는 버리고 떠나가는/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김진경 작사, 고봉산 작곡, 노래 1963년)

잘 있었나 오륙도 하우와유 부산항/바다에 시달린 마도로스 가슴을/한잔에 달래보는 선술집이다/도꾸에 잠든 배는 7일간 수리/마셔라 마셔 노래하고 춤추자 남포동 거리.
물위에 뜬 등대불 깜박이는 부산항/기나긴 뱃길에 마도로스 향수를/마음껏 풀어주는 고향이란다/돈이야 돌고 도는 항구의 풍속/달려라 달려 해운대다 송도다 남포동 거리. -칠일 간 부산항(야인초 작사 김종유 작곡 정향 노래, 1966년)

노래를 부른 가수 정향(본명 정천석)씨는 경북 고령 출신으로 열두 살 때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했다가 해방 후 열여덟 살 때부터 부산에서 생활했다. 동화극장 앞에서 정일사라는 시계점을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낚시광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월남파병의 이별하는 부산항,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는 이민선도 부산항에서 출발했다. 그렇듯 부산항은 우리나라 역사의 현장이었다.

▲ 영화 ’연락선은 떠난다‘, ‘울며 헤진 부산항’, ‘돌아와요 부산항에’ 영화포스터


1970년대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의 고국방문에 맞춰 등장한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을 대표하는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1975년,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의 고국방문에 맞춰 불린 노래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부딪혀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황선우 작사, 작곡, 조용필 노래, 1975년)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가수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미소라 히바리를 비롯해 ‘가장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한 외국 가요’라는 명예도 갖고 있다.
이외에도 부산항 관련 노래는 수없이 많다. ‘여수의 부산항구(백호, 박춘석, 손인호, 1955년)’, ‘한 많은 오륙도(석여인, 이정화, 차은희, 1955년)’, ‘남포동 마도로스(반야월, 김화영, 원희옥, 1958년)’, ‘제3부두(천봉, 허경구, 윤일로, 1958년)’, ‘항구의 사랑(최치수, 김부해, 윤일로, 1959년)’, ‘그리워라 부산항(반야월, 김호길, 최갑석, 1960년)’, ‘로맨스 항로(야인초, 박금호, 시민철, 1962년)’, ‘부산항 제3부두(장덕후, 김화영, 최숙자, 1964년)’, ‘꿈속의 부산항(박원희, 임철, 이미자, 1965년)’, ‘제2부두 갈매기(이철수, 백영호, 하춘화, 1965년)’, ‘울지마라 부산항(월견초 , 이인권, 이미자, 1966년)’, ‘안개 낀 부산항(길옥윤, 길옥윤, 남일해, 1967년)’, ‘황혼의 제3부두(이두형, 박현우, 문주란, 1970년)’, ‘그 님은 마도로스(신해성, 박충남, 송춘희, 1971년)’, ‘부산항 제3부두(유정, 고봉산, 최안순, 1976년)’, ‘다시 찾은 부산항(이두형, 박현우, 나지훈, 1977년)’, ‘내 사랑 부산항(김진룡, 김진룡, 해와달, 2001년)’ 등등.

부산항은 지난 2016년 한진해운 부도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으나 이제는 물동량이 증가해 개항 이래 최대치로 증가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세계 속의 일등 항으로 성장할 부산항, ‘바다가 미래다’는 말처럼 대한민국의 가장 큰 희망은 바로 이곳 부산항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지일 뿐이 아니라 해양관광과 문화의 중심지 부산항. 무엇보다 부산항이 정겨운 건 노래로써 우리들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계속)

[참고] ‘부산항 개항 141주년 기념, 노래로 돌아보는 부산항’ 자료집(박성서,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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