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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는 또 없다
2020년 11월 05일 (목) 01:47:33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이은주 한의사 / 생태주의 건강 성생활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미련일랑 두지 말자 …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처럼 물 흐르듯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또 구름이 흘러가듯, 바람이 불어가듯, 그렇게 나뭇가지에도 걸리지 않고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조용하고 순탄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기에 서로 경쟁하고 간섭받고 부딪치며 사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인생은 피곤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웃음이 사라진 사회. 그것은 더욱 삶을 힘들어 진다.

코로나-19 이후로, 사람의 생명에 관하여, 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이 낯선 억압환경, 너무 한산해진 나머지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도로와 골목들, 무엇보다 많은 죽음의 소식들이 삶에 대한 새삼스런 각성,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

며칠 전 문득, 이것은 개인적인, 그리고 지극히 우연히 일어난 감정이지만,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도 식물이나 다른 동물, 벌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의식이 되는 것이다.

중국 송대의 성리학자 주돈이는 하늘 아래서 만물이 형성되는 과정을 <태극도설>을 통해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서 그는 태극의 상반된 두 속성, 즉 음과 양이 교감하는 가운데 만물이 생겨났고, 그것들이 다시 무궁한 변화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세상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상반된 두 속성이 교감하는 것은 극과 극이 충돌하는 방식이 아니라 목화토금수, 즉 다섯 가지 기운(五行)의 순환을 통해서다.

여름과 겨울은 직접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봄과 가을이라는 다른 중간적 시간들을 거쳐 연결된다. 음과 양, 두 기운이 교감하는 과정에서도 무수히 많은 기운의 스펙트럼이 작동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수억 년을 반복하는 동안 지상의 사물은 점점 더 복잡하고 세분하여 발달되고 생물들은 점점 더 정교하게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지속 끝에 인간이 생겨났다. 주돈이 선생의 표현을 빌면 ‘유인야득기수이최령(惟人也得其秀而最靈)’, 즉 ‘이 가운데 인간이 가장 빼어난 것을 취하여 최고의 영이 되었다’는 것.

현대 생물학의 언어를 빌려 ‘번역’해보자면, 진화단계마다 최상의 것만 고르기를 반복한 끝에 태어난, 최고의 결과물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다. 나아가 인간 중에서도 진화가 가장 잘 이루어진 인간, 즉 성인(聖人)은 천지와 그 성품이 일치된다고 선생은 덧붙인다. “(성인은) 성품이 천지와 부함하고, 총명은 일월과 부합하며, 순리를 따르기는 계절이 순환함과 같이 한다.” 인간이야말로 음양의 조화에서 비롯된 ‘천지창조’의 여러 결과물 가운데 최종적 완성품이라는 뜻이 되겠다.

인간은, 모두 성인이나 위인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자체가 엄청난 축복에 해당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우월감정’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이 생(生)의 기회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다.

죽음 이후, 또는 이전에 관하여 소크라테스의 상상이나(그는 죽기 직전 죽은 사람들의 미래에 관하여 “선한 사람에게는 더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고, 악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교의 윤회론을 떠나 상상해보더라도, ‘인간’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생이 끝난 뒤에 우리는 전혀 다른 무엇이 될 수밖에 없다. 소월의 시구(詩句)처럼 ‘허공에 산산이 흩어져’ 소멸할 수도 있고, 아무 의식 없는 흙이 되어 이후 수만 년을 남의 발에 밟히며 지날 수도 있고, 나무가 되거나 풀벌레가 되거나 배고픈 독수리가 되어 고달픈 생을 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지금 이 생은 ‘단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유일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이 존재양식은 지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양식들 가운데 어쩌면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구현하기에 가장 유리한 양식일 수도 있다. 불교의 ‘육도윤회’ 이론에 따르면 인간으로서의 삶(人間道, manussa)은 하늘(天道, deva)의 바로 밑에 있는, 피조물로서는 가장 높은 단계의 삶이라는 것 아닌가.

우리가 어디서 왔고, 다시 어디로 흘러갈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번 주어진(그것도 인간으로) 생을 아무런 노력도 결실도 없이 한탄만 하다 간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기분이 들더라도, 그래서 노력을 포기하기는 이르다. 목숨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고 도전할 수 있다. NM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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