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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형의 100년의 기록 100년의 교훈
2020년 08월 08일 (토) 19:45:48 김정형 webmaster@newsmaker.or.kr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지난 20년간 알라딘에서 가장 많이 팔린 SF소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지난 21년간 자체 SF(과학소설)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알라딘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판매한 SF 중 디스토피아를 다룬 ‘멋진 신세계’가 판매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3위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순으로 나타났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6위를 차지해 국내 SF로는 상위 20위 안에 유일하게 들었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가문과 문학가 집안의 혈통을 갖고 태어나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백과사전적 박학다식을 발휘하며 30권의 책을 펴낸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였다. 그의 저서나 작품은 풍자가 번뜩이고 지식이 심오한 게 특징이다. 중반기까지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오만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예고하는 예언자적 작품이 많았으나 후반기에는 동양정신과 신비주의 등에 천착했다.
헉슬리는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가문과 문학가 집안의 혈통을 갖고 태어났다. 할아버지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발전시킨 저명한 과학자였다. 형 줄리언 헉슬리는 생물학자, 동생 제임스 헉슬리는 의사이자 정신병리학자로 유명했다. 이복동생 앤드루 헉슬리도 노벨상 생리·의학상을 수상(1963)한 세계적인 생리학자였다. 어머니는 옥스퍼드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시인으로 영국의 유명 시인이자 문예비평가인 매슈 아널드의 질녀였다. 종교와 사회문제를 대담한 소설로 묘사한 햄프리 워드 부인도 헉슬리의 외척이다.
헉슬리는 이러한 지적 환경 속에서 태어나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대 의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1911년 각막염 수술을 받은 후 눈이 극도로 나빠져 1916년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4살 때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1908)과 둘째 형 노엘 헉슬리의 자살(1914)에 이어 시력상실의 충격까지 더해지자 내면 세계로 침잠했다.
‘불타는 수레바퀴’(1916) 등 몇 권의 시집을 냈으나 첫 장편소설 ‘크롬 옐로’(1921)가 호평을 받자 소설가로 일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크롬 옐로’는 1차대전 후 지식층에 만연한 혼란과 퇴폐를 풍자적이고 파괴적인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후 1차대전 후 방황하는 지식인과 유한부인을 그린 ‘어릿광대의 춤’(1923), 1920년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연애대위법’(1928)을 출간함으로써 1920년대 영국의 대표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마침내 1932년 ‘멋진 신세계’를 출간함으로써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과학과 진보에 대한 맹신과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는 과학의 무한 발전이 인간의 안락과 사회 안정을 보장하기는커녕 종국에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비극적 상황을 풍자한 반유토피아 소설이다. ‘멋진 신세계’의 의도는 과학과 진보에 대한 맹신과 인간의 욕심이 결국 유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인 디스토피아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을 1920~1930년대에 대두된 전체주의적 정치 체제와 연결했다는 점에서는 17년 후 등장할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연상시켰다.
‘멋진 신세계’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제5막 1장에 나오는 “오,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에서 땄다. 시대 배경은 ‘포드 기원’ 632년의 영국 런던이다. ‘포드 기원’은 미국의 자동차회사 포드사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T형 자동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서기 1913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따라서 AD로 말하면 2540년이다.
그런데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기점으로 파괴적 회의주의자에서 건설적 도덕론자로 변신한다. ‘가자에서 눈이 멀어’(1936)를 후기 도덕가적 경향을 띤 첫 작품으로 꼽는다면 ‘멋진 신세계’는 헉슬리 인생의 전기와 후기의 가교적이고 과도기적 작품이다. 헉슬리는 1937년 거의 실명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주로 캘리포니아주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LSD 복용으로 환각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길 떠나

1944년에는 가톨릭 신비주의와 불교·힌두교의 종교적 체험에 몰두하면서 부정과 비리에 대한 불교적 해석을 모색한 ‘시간은 멈추어야 한다’를 발표하고, 1949년에는 과학과 전쟁에 의해 황폐해진 인간세계를 동물세계에 빗대 풍자한 ‘원숭이와 본질’을 발표했다. 점차 궁극적인 실체란 무엇인가에 빠져들면서 1953년 환각제 메스칼린을 복용하고 이후 총 10년에 걸쳐 10번의 환각 세계를 경험했다.
이때의 환각 체험을 소설로 쓴 ‘지각의 문’(1954), ‘천국과 지옥’(1956) 등은 당대에 ‘사이키델릭 문화의 고전’, ‘히피의 경전’으로 칭송받았다. ‘신비주의자’, ‘약물 옹호자’라는 비판이 가해졌으나 일부 젊은이는 ‘지각의 문’을 하나의 교조로 받아들였다. 유명 록그룹 ‘도어스(Doors)’도 ‘지각의 문’에서 딴 이름이다. 1962년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와는 달리 과학에 지배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유토피아 소설 ‘섬’을 남겼다.
그리고 1963년 11월 22일, LSD 복용으로 환각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부인이 읽어주는 시를 들으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그의 부인이 쓴 ‘영원한 순간’에는 헉슬리의 마지막 순간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날 헉슬리는 2시간 간격으로 두 차례 LSD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오후 5시 20분 평화롭게 사망했다. 다만 5시간 전 피살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에 가려져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100년 전 美 여성 투표권 획득의 선구자였던 수전 앤서니의 삶

1872년 11월 1일,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선거사무소 앞이 요란했다. 수전 앤서니(1820~1906)가 3명의 여자 형제와 밧줄로 서로를 묶고 나타나 선거 유권자 등록을 요구하면서 주변이 시끄러웠던 것이다. 담당 공무원이 “여성에겐 투표권이 없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앤서니가 1868년 7월 발효된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을 근거로 제시했으나 공무원은 계속 등록을 거부했다.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은 ‘어떤 주도 합중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실시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미국 화폐에 등장한 최초 여성

앤서니는 “시민으로서의 내 권리를 부정한다면 당신들을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 당시는 시민권에 대해 부당한 거부를 하면 처벌을 받았다. 그렇다고 위법한 투표를 허가해도 역시 처벌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앤서니의 유권자 등록이 왜 위법한 것일까. 그것은 수정헌법 제14조가 미국 헌법 사상 최초로 ‘남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남성들만 시민이 될 수 있다는 뜻을 의미했다. 또한 그때까지 여성들의 투표권 문제는 연방이 아닌 주의 문제였다. 연방 헌법이 아닌 각 주의 헌법에서 투표권을 남성들에게만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페스트냐 콜레라냐를 선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해도 고발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공무원은 격렬한 논쟁 끝에 할 수 없이 앤서니를 유권자로 등록시켰다.
앤서니와 여동생들은 나흘 뒤인 11월 5일 연방선거 투표장으로 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그러자 “여자가 투표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흥분한 남성이 미 합중국의 헌법을 위반한 불법 선거라며 고발장을 냈다. 앤서니와 선거관리 직원들은 체포되었으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다. 재판 날짜가 1873년 5월로 잡힌 가운데 앤서니는 남성들로만 구성된 배심원들을 상대로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졌다며 내심 미소를 지었다.

“앤서니는 선거를 했고 미국 헌법은 충격을 받았다”

▲ 수전 앤서니

앤서니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퀘이커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퀘이커교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가르치고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앤서니 역시 여학교에 입학했으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직물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중퇴했다. 그 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30대가 된 1850년대부터 노예해방운동과 여성운동에 헌신했다.
1852년에는 일생을 두고 우정을 나눌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을 만났다. 스탠턴은 1848년 7월 19일 미국 뉴욕주 세니커폴스에서 최초의 여성권리 집회를 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회운동가로 초창기 여성권리운동의 선구자였다. 미국의 역사가들은 세니커폴스 집회와 앤서니의 재판을 미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촉발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는다. 두 사람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이고 노예제 반대, 금주운동 등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던 중 수정헌법 제14조가 1868년 7월 28일 비준되었다.
앤서니는 여성의 유권자 등록과 선거가 불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재판이 열릴 때까지 자신을 변호하는 대중연설을 30차례 했다. 법정에서도 수정헌법 제14조를 근거로 시민의 특권인 투표권을 여성들에게 부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14조는 여성의 선거권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생명, 자유, 재산 그리고 공정한 재판의 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만을 인정한 것”이라고 거부했다.
앤서니는 ‘합중국이나 각 주는 합중국 시민의 투표권을 인종, 피부색 또는 과거의 신분을 이유로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못한다’는 수정헌법 제15조 제1항(1870.3. 비준)을 내세워 참정권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법정은 “여성의 투표를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없으므로 투표권을 내줄 수 없다”며 1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벌금을 내지 않더라도 구속하지는 않겠다고 판결해 사실상 강제집행력이 없는 상징적인 선고임을 인정했다. 3명의 공무원은 각각 25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벌금을 내지 않아 구속되었다가 대통령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판결 이튿날 한 신문은 “승리자는 앤서니다. 그는 선거를 했고 미국 헌법은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앤서니는 벌금을 내지 않았고 아무도 벌금을 강요하지 않았다.
당시 남성들에게 여성은 인간이고 흑인은 노예에 불과한데도 남성들은 흑인에게까지 주어진 투표권을 여성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흑인의 투표권도 명목상에 불과했다. 남성들은 “여성이 비논리적이고 변덕스러우며 투표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을 지기에는 너무 연약하다”고 주장했다.
남성들이 이런 사고에 빠져 있는 한 여성이 할 것이라곤 지속적인 헌법 개정 투쟁뿐이었다. 당시 세계적으로는 뉴질랜드(1893), 호주(1902), 핀란드(1906) 등에서만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었을 뿐 미국과 영국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도 투표권은 요원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1940년대 중반에서야 여성의 투표권이 실현되었고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서야 여성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성별을 이유로 거부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

앤서니의 참정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여성들은 피켓 시위와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러자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헌법 개정안이 몇 차례 의회에 제출되었다. 결과는 남성들의 완고한 벽에 막혀 늘 실패로 끝났다. 그 사이 앤서니는 노환으로 1906년 5월 숨을 거뒀다.
그러나 역사는 조금씩 진보했다. 1890년 와이오밍주를 시작으로 1918년까지 콜로라도, 유타 등 15개주가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했다.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창당한 진보당은 미국 역사상 여성 참정권을 처음 표방해 여성 참정권 운동자들을 고무했다. 고집불통이던 남성 의원들의 인식에도 점차 변화가 생겼다. 1차대전 때 전시노동에 동원된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해야 하는 데다 1918년 가을선거 때 여성들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 의원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성별을 이유로 거부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는 수정헌법 제19조는 하원(1919.5.21)과 상원(6.4)을 통과해 각 주의 비준을 기다렸다. 1920년 8월 18일 마침내 테네시 주의회가 수정헌법 개정에 필요한 36번째 주로 수정헌법을 비준함으로써 여성들의 지난했던 투쟁도 막을 내렸다.
8월 26일 베인브리지 콜비 국무장관이 제19조에 서명하고 연방헌법 조항으로 공포한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한 기자는 제19조를 ‘수전 앤서니 수정헌법’이라고 칭했다. 100년이 지난 1979년, 미 정부는 앤서니의 초상을 1달러짜리 동전에 넣어 평생 여성 참정권 쟁취를 위해 싸워온 그의 업적을 기렸다. 이로써 앤서니는 미국 화폐에 등장한 최초의 여성이라는 영예도 안았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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