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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하숙생’의 가수 출신 정치인 1호, 최희준의 삶과 노래[3]
1960년대를 직시하고 서민들을 해학과 풍자로 달래다
2020년 08월 07일 (금) 14:25:48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 ‘길 잃은 철새/엄처시하’ 음반(신세기 가-12809)과 전성기 시절의 가수 최희준씨.

1960년대, 허스키보이스로 등장해 우리나라 가요계를 ‘미성의 시대’에서 ‘개성의 시대’로 전환시킨 주인공, 가수 최희준(1936.5.30~2018.8.24). 1961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시작으로 ‘하숙생’, ‘맨발의 청춘’, ‘팔도강산’, ‘종점’, ‘진고개 신사’, ‘길 잃은 철새’, ‘뜨거운 침묵’, ‘광복 20년’... 등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60년대 최고가수다.

'가수 출신 정치인 1호'라는 수식어를 달고 화려하게 여의도까지 진출했던 인물.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소박하고 또한 서민적인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90년대에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자신의 지역구가 둘이라고 늘 강조하기도 했는데, ‘하나는 자신의 지역구인 안양 동안갑구,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가요계’라고 했을 정도로 가요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헌신적이었다.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과 한국문예진흥원장도 역임했고 국민문화훈장 화관장을 서훈 받았다.

당시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한 재즈의 스윙 리듬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발표하며 끝없는 음악적 변신을 시도, 대중음악의 폭을 넓혔다. 거침없이 자유로운 리듬 사이를 드나들었던 가수 최희준의 삶과 노래, 그 세 번 째.

글l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최희준과 1960년대 드라마·영화주제가 전성시대, 그 멈추지 않는 질주

지난 호에서 거론했듯, TBC 방송가요대상과 MBC 10대가수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최고 인기가수상을 연거푸 수상함과 동시에 펼쳐지는 최희준 시대, 이즈음 히트한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 드라마, 영화주제가였다.

그렇듯 최희준의 전성기는 드라마와 영화주제가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문화방송(MBC, 1961년), 동아방송(DBS, 1963년), 동양방송(TBC, 1964년) 등 라디오방송국이 잇달아 개국하고 또한 본격적인 TV시대가 개막되면서 이전까지 서민들의 오락물이었던 악극단 쇼가 점점 퇴조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안방극장 시대’의 개막과 맞물려 대중가요 판도가 점차 달라지고 있었다.

당시 드라마는 재방송까지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드라마 방송 시작 전과 후, 그리고 재방 시작 전과 후. 미디어라 해야 라디오가 거의 전부였던 시기에 이처럼 하루에 네 번 씩이나 전파를 탔으니 노래가 히트되는 것 또한 당연했다. 특히 이런 주제가들은 1분 10~20초 안에 1절을 처리해야 했다. 이처럼 짧은 것도 큰 장점이었다.

▲ KBS 라디오 인기연속극 ‘하숙생’의 영화포스터와 주제가 음반(신세기 가-12105).

지난 호에 소개했듯이 1964년, 시각장애인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드라마 ‘진고개 신사(MBC), 60년대 뒷골목 청춘들의 사랑과 고뇌를 그린 영화 ‘맨발의 청춘(1964년, 김기덕 감독)’, 60년대 생활상을 담은 서민 드라마 ‘월급봉투(MBC, 1965년)’, 사형수의 이야기를 그린 ‘뜨거운 침묵(KBS, 1965년)’,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을 그린 ‘가슴을 펴라(라디오서울, 1965년)’에 이어 ‘하숙생(KBS, 1966년)’, ‘엄처시하(MBC, 1966년)’, ‘종점(1966년, 김기덕 감독)’, ‘팔도강산(1967년, 배석인 감독)’, ‘길 잃은 철새(JBS, 1966년)’, ‘광복 20년(TBC, 196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히트곡 행진은 거침이 없었다.

당시 연속극은 사회상을 그린 드라마와 더불어 계몽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따라서 노랫말 속에 사회상과 세태, 시대상이 리얼하게 담겨 있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온통 사로잡은 주제가들을 계속해서 살펴보자.

인생을 하숙생에 빗댄 드라마, ‘하숙생’

우리의 인생을 하숙생에 빗대 표현한 최희준의 대표곡으로 KBS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주제가다. 방송 시작과 더불어 대중들 입에 오르내리며 음반이 채 나오기 전에 이미 히트한 노래다.

1965년 말, 전남 여수의 한 공연장에서 관객들로부터 ‘하숙생’을 불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순간 최희준씨는 난감했다. 가사를 미처 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우 당혹스런 그는 일단 관객들에게 사과부터 한 후 그날 저녁 방송되는 드라마를 통해 부랴부랴 가사를 외운 뒤 그날 밤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특히 이 노래는 부를 때마다 앙코르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에 아예 공연의 마지막 순서로 정했다. 드라마 시작 5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듯 '하숙생'은 처음부터 분신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 ‘최희준=하숙생’이라는 등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하숙생(김석야 작사, 김호길 작곡, 최희준 노래)

드라마는 시작과 끝 부분에 방송되는 주제가 외에 극중에서도 수시로 흘러나왔다. 주인공이 변심한 애인 집 앞에서 매일 밤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이 얼굴에 화상을 입자 애인이 배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주인공은 이후 성형수술을 한 뒤 복수를 위해 바로 옆집에 하숙을 하며 아코디언 멜로디로 그녀를 괴롭힌다. 이들 연인에겐 추억의 멜로디였다. 그녀는 마침내 뉘우치고 돌아오지만 주인공은 사랑도 미움도 모두 버리고 미련 없이 떠난다는 내용으로 우리의 삶 자체를 하숙생에 비유했다.

이듬해 정진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신성일, 김지미가 주연을 맡았다. 1970년 제16회 자카르타 아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김지미)을 수상했고 제27회 베니스 영화제에도 출품되었다.

현재 충남 천안삼거리 공원에 이 노래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인근의 천안시 입장면이 극작가 김석야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공처가의 애환을 익살스럽게 그린 드라마, ‘엄처시하’

‘하숙생’의 극작가 김석야씨가 집필한 mbc 드라마 ‘엄처시하(1966년)’. 엄처시하(嚴妻侍下), 즉 아내에게 쥐어 사는 남편을 비웃는, 아내의 변천사를 아주 코믹하게 그린 홈드라마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가부장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공처가의 에피소드마다 웃음 포인트가 되었다. 맘보, 차차차에 이어 유행한 도돔바 리듬에 실려 속칭 ’공처가‘의 애환을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첫 아이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눈 밑에 잔주름이 늘어 가니까/무서운 호랑이로 변해 버렸네/그러나 두고 보자 나도 남자다/언젠가 내 손으로 휘어잡겠다/큰 소릴 쳐보지만 나는 공처가.

한 세상 사노라면 변할 날 있으련만/날이면 날마다 짜증으로 지새는/마누라 극성 속에 기가 죽어서/눈치밥 세월 속에 청춘이 가네/그러나 두고 보자 나도 남자다/언젠간 내 손으로 휘어잡겠다/큰 소릴 쳐 보지만 나는 공처가. -엄처시하(김석야 작사, 홍현걸 작곡, 최희준 노래)

이와 같은 서민들의 희망과 해학, 풍자는 당시 '방송가요’, 즉 ‘신가요 운동'의 주요 소재였다. 최희준 선생이 발표한 노래에는 이처럼 코믹한 노래들이 많다. ‘가불하는 재미로 출근하다가/월급날은 남몰래 한숨을 쉰다/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남는 건 빈 봉투/한숨으로 봉투 속을 채워나 보세(월급봉투, 신봉승 작사, 1965년)’, ‘세상에 태어날 때 울었으면 그만이지/눈물이 도대체 뭐 말라 죽은 거냐(위를 보고 걷자, 유호 작사, 1965년)’,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상처뿐인 청춘, 유호 작사, 1966년)’, ‘잘 살고 못 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팔도강산, 신봉승 작사, 1967년)’, ‘언제나 굽실굽실 쩔쩔매지만/부장님 상무님도 그랬다드라(샐러리맨 출세작전, 추식 작사, 1967년)’, ‘세상에 돈만 있다고 뽐내지 말라/꼬리치는 여자 웃음에 녹아나는 사내들(여자가 더 좋아, 주동진 작사, 1965년)’ 등등. 이러한 노래들로 인해 최희준씨의 모습이 유독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서민적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나는 곰이다, 늘 유쾌한‘미스터 곰’

그의 밝고 유쾌한 성격이 노래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가 발표한 또 한 곡의 재미있는 노래가 ‘미스터 곰’이다,

'미스터 곰'은 TBC 드라마의 주제가였다. 유호 작사·이봉조 작곡으로 드라마 제목도 '미스터 곰'. 도입부에 '우하하하하, 나는 곰이다!'라고 호쾌하게 외치며 시작하는 게 일품인 노래다.
처음 취입 당시 이 부분이 잘 안 되어 탤런트 김순철의 목소리를 빌려 녹음했다. 그러나 결국은 안 되겠다 싶어 맹렬히 연습한 끝에 결국 이 부분도 최희준씨 육성으로 취입되었다.

‘나는 곰이다’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 이 노래는 처음 ‘미스터 곰(신세기 가-12146, 1967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1970년에 ‘나는 곰이다’로 제목이 바뀌어(오아시스 OL-802) 발표되었다.

미련하다 못났다 골려도 좋다/재주는 없다마는 할 짓은 다 한다/태산이 높다 해도 못 오를 게 무어냐/길이 험해 자빠져도 웃으면서 일어나/자빠져서 코를 다쳐도 울지 않겠다/산만 보고 올라가는 나는 곰이다.

사람마다 못났다 웃어도 좋다/재주는 없다마는 할 짓은 다 한다/하늘이 넓다마는 내 마음에 비할까/가는 길이 험해도 뛰어라 뛰어라/자빠져서 코를 다쳐도 울지 않겠다/산만 보고 올라가는 나는 곰이다. -미스터 곰(추식 작사, 이봉조 작곡, 최희준 노래)

별명이 ‘찐빵’인 최희준씨는 그때그때 히트곡에 따라 이름 대신 '진고개 신사', '노신사', '곰'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한 계몽 홍보영화, ‘팔도강산’

▲ ‘팔도강산’ 음반(신세기 가-12150)과 영화 ‘팔도강산’, ‘내일의 팔도강산’, ‘아름다운 팔도강산’, ‘돌아온 팔도강산’ 포스터.

1965년 정부가 내건 슬로건은 ‘싸우며 일하는 해’다. 따라서 ‘싸우며 일하고 일하며 싸우세’라는 노래가 연일 울려 퍼졌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맞물려 ‘잘살아 보세’가 울려 퍼졌고 드라마와 영화도 계몽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무렵 회자되던 또 하나의 유행어가 ‘잘 살고 못 사는 건 팔자가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였다. 영화 ‘팔도강산’ 주제가의 한 소절이다.

‘팔도강산’은 1967년 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한 국책홍보 계몽영화다. 배석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서울 국도극장에서만 33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60년대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성춘향’(1961년)에 이어 세 번째 흥행작으로 부상했다. 이 영화에서 배우 김희갑씨는 한의원을 경영하는 딸 부잣집 아버지로 등장, 황정순씨와 함께 실제 부부로 착각하리만치 자연스런 연기를 선보였다.

줄거리는 이렇다. 1남 6녀를 둔 한 노부부(김희갑, 황정순 분)가 팔도강산 곳곳에 사는 아들딸들의 초대를 받고 유람여행을 떠난다. 가는 곳마다 몰라보게 달라진 근대화의 모습에 노부부는 흐뭇하다. 더구나 아들딸들은 모두 하나같이 건실한 근대화의 일꾼들. 이러한 내용으로 영화주제가 또한 크게 히트했다.

팔도강산 좋을시고 딸을 찾아 백 리 길/팔도강산 얼싸안고 아들 찾아 천 리 길/에헤야 데헤야 우리 강산 얼씨구/에헤야 데헤야 우리 살림 절씨구/잘 살고 못 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줄줄이 팔도강산 좋구나 좋다.

팔도강산 좋을시고 살판이 났네/팔도강산 얼싸안고 웃음꽃을 피우네/에헤야 데헤야 우리 강산 얼씨구/에헤야 데헤야 우리 살림 절씨구/잘 살고 못 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줄줄이 팔도강산 좋구나 좋다. -팔도강산(신봉승 작사, 이봉조 작곡, 최희준 노래).

이후 ‘속 팔도강산’(양종해 감독, 1968년), ‘내일의 팔도강산’(강대철 감독, 1971년), ‘우리의 팔도강산’(장일호 감독, 1972년), ‘아름다운 팔도강산’(강혁 감독, 1972년) 등 시리즈가 쏟아졌다. 노부부로 등장하는 김희갑, 황정순을 비롯해 고은아, 김승호, 김지미, 김진규, 김혜정, 김희라, 도금봉, 문정숙, 박노식, 사미자, 신성일, 신영균, 오수미, 유지인, 윤일봉, 윤정희, 이민자, 장동휘, 최무룡, 최은희, 허장강, 현석, 홍세미 등 인기배우들과 가수 김상희, 김시스터즈, 김추자, 박재란, 손인호, 은방울자매, 이미자, 이은관, 최희준, 한명숙, 현인 등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했다. 노래와 함께 전국 각지의 명승지와 산업현장을 두루 찾아다니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무료 순회상영을 개최하여 야당으로부터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난과 함께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4년 KBS-TV에서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다시 제작되었다.

영화는 시리즈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 ‘팔도사나이’, ‘팔도식모’, ‘팔도며느리’, ‘팔도검객’, ‘팔도여군’, ‘팔도사위’ 등 팔도 시리즈 영화의 원조 격으로 자리매김했다.

 

생생한 격동의 현장, 화제의 정치 드라마 ‘광복 20년’

▲ 동양방송과 계몽사가 펴낸 ‘장편 다큐멘터리/광복 20년’ 부록 음반. 이 음반에 최희준씨가 부른 주제곡이 2절까지 수록되어 있다.

해방 이후 5.16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조명한 TBC 동양라디오의 정치 드라마 ‘광복 20년’. 1967년 8월7일부터 1977년 9월까지 매일 20분씩 10년 2개월 간 방송되었다.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정치사만큼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것이 있을까. 더구나 해방 직후 좌우익의 혼란기를 거쳐 6.25와 4.19, 5.16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몰려있던 1945년에서 60년대 초반까지의 정치사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당시 TBC 동양라디오가 그 생생한 역사를 드라마로 다뤘다. 해방 때부터 20년간의 우리나라 정치사가 마치 지나간 뉴스 필름 돌아가듯 생생히 재현되었다. 1967년부터 방송된 ‘광복 20년’에는 김구, 이승만, 여운형, 박정희를 포함한 수많은 거물급 정치인들을 등장인물로 격동의 정치사에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사까지 낱낱이 재현됐다. 인물들의 생생한 인터뷰 육성도 담았다.

무엇보다 ‘광복 20년’은 새로웠다. 내용적으로 정치드라마라는 장르도 그러했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택한 것도. 무엇보다 특히 주제가로 인해 이 드라마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들 또한 많다.

먹구름 가시면 별빛 더 맑은데/이십년 풍운 속에 그 사람 그 이름은/비바람에 흘렀던가/아- 영욕은 무상해라 광복 이십년.

어둔 밤 가시면 아침이 오는가/이십년 그 세월에 묻고 묻힌 사연들/서광은 비치리라/아- 새 역사의 물결이여 광복 이십년. -광복 20년(이영신 작사, 김광수 작곡, 최희준 노래)

광복 20년,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기드라마. 주제가의 주인공 최희준씨 역시 무대에 서는 시기에 따라 ‘광복 30년’, ‘광복 50년’ 등 가사를 바꿔 부를 정도로 오랫동안 애착을 가진 노래였다.

▲ 최희준 ‘종점’ 음반(신세기 가-12123)과 영화포스터.

극한상황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스릴러,‘종점’

영화 ‘종점(김기덕 감독, 1966년)’은 ‘극한 상황에 놓인 한 젊은이의 몸부림치는 애정행각’이라는 영화 카피가 그렇듯 극적인 스릴러물이다. 신성일, 고은아, 문정숙, 트위스트김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드라마틱한 전개, 사랑의 아픔을 청춘의 종점에 빗대어 그린 영화로 주제가 또한 자신의 진실함을 토로하는 메시지를 담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너를 사랑할 땐 한없이 즐거웠고/버림을 받았을 땐 끝없이 서러웠다/아련한 추억 속에 미련도 없다마는/너무도 빨리 온 인생의 종점에서/싸늘하게 싸늘하게 식어만 가는/아-- 내 청춘 꺼져가네.

너를 사랑할 땐 목숨을 걸었었고/버림을 받았을 땐 죽음을 생각했다/지나간 내 한평생 미련도 없다마는/너무도 짧았던 내 청춘 종점에서/속절없이 속절없이 꺼져만 가는/아-- 한 많은 내 청춘. -종점(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 최희준 노래)

▲ 최희준 선생과 인터뷰 당시 필자, 2011년.

미8군쇼 출신 최희준씨는 또한 재즈에 심취했다. 작곡가 이봉조, 길옥윤씨와 함께 콤비를 이뤄 늘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고 ‘맨발의 청춘’이나 ‘빛과 그림자’, ‘꿈은 오늘까지만’, 그리고 여러 번안가요를 통해 재즈를 대중화시켰다.

발표한 노래가 많은 만큼 세월 따라 묻힌 노래 또한 많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여전히 애창되는 노래 역시 많다. 최희준 선생이 남긴 수많은 명곡들, 시간이 흐른 만큼 이제는 오래된 노래지만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노래다. 오늘 다시 한 번 그의 노래들을 귀 기울여 들어봐야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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