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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시대에 ‘접촉’은 어떻게 하나
2020년 07월 06일 (월) 22:25:16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코로나19라는 자연의 압박에 의하여 불가피한 선택이긴 하나, 인간에게 진즉 필요한 지혜가 아니었나 싶다.
1백년 전 스페인 독감 때는 기록된 사망자만 2천만명을 넘었다. 지금의 코로나19는 감염자 9백만에 사망자 50만명 이내에 머물고 있다. 스페인독감보다 약한 질병이라서가 아니다. 방역과 치료기술도 기술이지만, 지금은 다양한 ‘비대면 접촉’의 수단들이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비교적 용이해졌다. 그렇지 않다면 뚜렷한 백신이나 치료제도 발견되지 않은 전파 초기에 이미 스페인독감 못지않게 막대한 인명손실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대면 접촉’에도 한계가 있다. 코로나가 고개를 숙일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재감염 사례는 주로 몇 가지 환경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집단감염 위험시설’로 꼽히는 장소들인데, 종교집회와 시장, 유흥업소들이 여기에 속한다. 직장 학교를 포함하여, 현대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접촉시설’들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접촉 장소들을 제외해버린다면 현대인들은 일상의 패턴 자체를 바꿀 수밖에 없다.
우리의 주제와 연관하여 코로나시대의 성생활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적 접촉이야말로 ‘밀접접촉’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일이다. ‘거리두기’라는 시대적 요구 앞에서 사랑을 나누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더 근본적인 모순관계를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정색하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우선, 지금 시대는 성생활이 예전 어느 때보다도 인류의 관심에서 소원해져 있었다. 인류의 성생활과 관련하여 벌써 20~30년 사이에 뚜렷해진 몇 가지 현상들이 ‘밀접접촉’이 어려워진 지금의 시대를 앞둔 하나의 예비적 징조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면 지나친 말일까. 처음에는 자유연애(혼외정사)가 한때 사회적 화두가 되더니 이어서 가파른 이혼율 증가가 나타났다. 이혼율은 2000년 전후로 정부 통계에서도 쉽게 확인이 된다. 2천년대 들어와서는 혼인의 감소가 나타났고, 여러 리포트에서 섹스리스 부부의 증가가 보고되었다. 이후에는 출산율 감소와 함께 사회적으로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젊은이들은 합치지 않고 중장년에는 헤어지는 사람들이 늘어 오랫동안 현대 사회제도의 기반으로 여겨지던 일부일처제/ 가족중심 사회의 위기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결혼하지 않는 청년층과 무자녀 부부의 증가, 일인가구 세대의 증가는 그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혼술’ ‘혼밥’ 같은 용어가 유행하고 TV에서는 혼자 사는 독신자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도 한다.

이런 세태의 근저에 깔린 현대인의 심리 특성은 무엇일까. 성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줄어든 것으로 봐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독신/비혼 현상은 사실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문화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대다수 선진국에서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나이가 40대를 넘길 때까지 성 경험을 전혀 갖지 못한 샐러리맨들이 많아 국가가 성인 대상의 성(촉진)교육을 실시할 정도였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다고 알려진 북유럽 국가들마저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자연스런 성생활을 가져달라’는 캠페인 광고를 TV에 내보낼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이유를 생태주의 관점에서는 세계인구의 과다와 연관 지어 관찰해 왔다. 인구의 증가와 함께 물질적인 생산과 개발의 과잉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거기서 파생되는 환경의 변화(파괴와 오염)와 심리적 압박 등이 생식기능에 변화를 주었다. 크게는 자연이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기 위해 작용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래의 코로나19조차도 자연의 자기방어 기제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대의 가족은 성적, 혈연적 공동체라는 성격보다는 경제적 이해공동체적 성격이 강화되어 있는 듯하다. 종족을 유지/번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필요성보다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자가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보호장치로서의 역할이 더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밀접접촉’이 억제되는 시대에 대비라도 해왔던 것일까.
한편으로는 코로나19가 많은 사람들을 자신들만의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20세기에 자유분방한 성 개방풍조에 일격을 가한 에이즈보다도 더 강한 억지력으로, 코로나19는 믿을 수 없는 타인과의 밀접접촉을 자제하게 만들었다. 밀접접촉은 고사하고 2~3미터 이상의 사회적 거리가 새로운 룰이 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제한된 파트너와의 정숙한 성생활에 머물거나 아니면 대면접촉을 포함하지 않는 ‘플라토닉 러브’가 새삼 등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백년 전 시인 칼릴 지브란의 시가 떠오른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중략)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

▲ 이은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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