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8.9 일 11:52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피플·칼럼
     
“이순신 장군의 구국 정신을 널리 알리고 교육하겠다”
2020년 07월 04일 (토) 02:17:11 황인상 전문기자 his@newsmaker.or.kr

이순신 장군은 1592년 4월13일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1·2차 당항포해전, 한산도대첩,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장문포해전, 명랑해전, 노량해전에 참여해 불후의 전공을 세웠다.

황인상 기자 his@

최근 전남 신안군 안좌도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7년 음력 10월11일부터 18여일간을 체류했던 섬으로 밝혀지면서 관련 학계와 문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섬은 난중일기에 안편도라고 기록된 섬으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승리 후 왜군의 추적을 피해 한반도 서남해를 항해하면서 정박을 했거나 체류했던 장소 중 유일하게 어느 곳인지 밝혀지지 않았던 장소였다. 안편도라는 지명의 섬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계와 문화계 인사들은 안편도를 전남 신안군 팔금도 또는 장산도 등으로 추정해 왔다.

‘안좌도=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 임을 규명해 내다
국립목포해양대의 고광섭·박태용·김득봉 교수는 지난 3월 <한국해군과학기술학회지>에 ‘이순신 장군의 안좌도 수군기지에 대한 해양 전략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현재의 신안군 안좌도가 당시 안편도라는 사실을 재확인 하였다. 이에 앞서 이들은 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가 현재의 안좌도(과거 기좌도와 안창도라는 섬이 하나로 합쳐진 섬)라는 사실을 <한국항해항만학회지>를 통해  최초로 규명한 바 있다. 이들은 한국항해항만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과거 안편도로 추정되었던 팔금도와 장산도가 이순신이 기록한 난중일기의 지리적 위치와는 맞지 않고, 팔금도와 장산도 사이에 있는 안좌도가 이순신의 기록과 가장 일치함을 확인한 바 있다.  논문에 따르면 팔금도와 장산도는 난중일기에 기록된 북쪽과 서쪽 경관이 일부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동쪽 시야를 가리는 섬’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장군이 섬에 상륙하여 산에 올라 살핀 주변 지형 가운데 동쪽 시야를 가리는 섬은 실제로 존재하였고, 당시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섬은 현재는 섬과 섬 사이가 매립되어안좌도의 일부로 편입되어 그 형체가 건재함을 규명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상륙하여 오른 산은 현 안좌도로 편입된 기좌도의 매봉산이고, 동쪽 시야를 가리는 섬은 지금은 안좌도와 연결된 안창도였음을 확인함으로써 420여년 동안 숨어 있던 이순신의 섬을 찾은 것이다.

▲ 고광섭 교수

연구를 주도한 고광섭 목포해양대 해군사관학부 교수는 “2년이 넘는 현장 탐사와 항해지리과학적 분석 연구를 통해 기존 안편도로 추정된 섬들이 난중일기에 기록된 위치와 거리가 멀다는 점을 규명했으며, 팔금도와 장산도 사이에 있는 안좌도가 난중일기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좌도가 420여년 전 수군 기지로 적합했었는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했다. 이에 목포해양대 교수들로 구성된 탐사대는 끈질긴 추가 연구를 통해 안좌도는 당시 해상작전기지로 최적화된 천혜의 요새였다는 사실을 입증한 연구 결과를 최근  <한국해군과학기술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1918년부터 2019년까지의 지도·지형도와 1950년부터 1990년까지의 주요 항공사진을 참고해 안좌도와 매봉산 주변이 해상작전기지로서 갖춰야 할 지리적·자연적 위치, 교통로 확보 등의 수군 기지로서의 기본요건을 충족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고광섭 교수는 “수십회의 현장답사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과거 매봉산 북동쪽 현재 안좌면 양수장 부근까지 여객선과 화물선이 왕래했음도 확인했다”면서 “또한 미국 해양전략가 알프레드 마한의 해양 전략이론을 조선수군이 처해 있던 상황에 적용해 안좌도와 매봉산 일원이 해상기지로 적합했음을 입증했다”고 부연했다.

조선 수군의 재건 과정 재조명 위해 구국의 수군 항로 연구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해양대 대학원에서 항법학을 전공한 고광섭 교수는 미국 클락슨대 대학원에서는 전자항법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11년까지 해사 교수로 재직했으며 해군대령으로 예편했다.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왜 수군을 상대로 대승을 했지만 승리 후 현지에 체류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당시 왜 수군의 수백척 전선에 비해 조선의 전선은 겨우 13척에 불과한 빈약한 전력임을 감안하여 다음 날 예상되는 왜 수군의  반격을 피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명량바다에서 대승을 한 이순신 장군이었지만 명량바다를 떠나  조선수군을 이끌고 한반도 서남해안으로 작전상 후퇴를 해야하는 처량한 신세였다.
 이 고난의 항해 중 특이할 만한 항해는 10월 9일 일찍 법성포 인근 섬에서 출항하여 해남의 전라우수영까지의 항해로서 명량해전 이후 서남해안에서의 항행 중 가장 길고 험난한 항해였다. 출발지와 도착지의 항정은 56마일(약 103Km) 판옥선의 평균 속력을 3노트라고 할 때 무려 18시간을 지속적으로 항해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항해는 실제 해전 상황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명량해전 이래 서남해역을 항해하면서 조선수군의 정착지를 구하지 못하고 떠도는 형국에서 조속히 조선수군의 사령부인 우수영에서 조선수군을 재건하고 전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이순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라우수영에 입항한 이순신은 폐허된 우수영에서 조선수군을 재건하고 전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본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음을 인지하고, 그날 밤을 바다 가운데서 보낸 다음 전시 전략지휘소의 장소로 안편도를 선택하고 1597년 10월 11일 안편도로 이동했다. 안편도는 10월 29일 목포 고하도 상륙 전까지 18여일을 체류하면서 인근 육지의 관리들과 자주 전시 상황에 대하여 논의했고, 중앙 정부와도 소통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임진왜란 사에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더욱이 안편도 전시지휘소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권을 갖고  조선의  모든 수군과 함께  주둔했던  전시 수군진의 의미를 갖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안편도라는 섬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아 이순신의 잊혀진 섬으로 무려 420여년 동안 방치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광섭 교수는  목포해양대 해군장교 출신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순신 항로 탐사대” 라는 임시 조직을 만들어  충무공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연구에 나서 결국 안좌도가 당시 안편도라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 고광섭 교수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 승리 첫날부터 왜군 주력 부대의 재공격을 피해 해상과 오지의 섬에서 처절한 고난과 고통속에서도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조선 수군을 재건하여 왜 수군을 이 바다에서 몰아내고 조선의 바다를 되찾을 궁리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해전 승리의 그늘에 가려져 이순신의 생전 업적에서 저평가되고 있어 아쉬울 뿐이다” 며 “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중 삼도군통제사 재임명 후 바다에서의 행적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칠천량해전에서 괴멸된 조선 수군의 재건 과정을 재조명하기 위해 이순신 구국의 항로를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순신 장군의 항로 연구는 물론 그 분의 구국 정신을 널리 알리고 교육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NM

황인상 전문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